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미국에서는 빈부의 차이가 아주 심하다.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 팍 이스트 5번가나 파크 애비뉴에는 천만불이 넘는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할렘에는 폐허가 되어 버려진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롱아일랜드의 브룩빌에는 땅이 백만평이 넘는 호화저택이 있는가 하면 퀸즈나 브루클린에는 심지어 1~2평짜리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참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한 미국의 부유층은 대개 미국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이다. 그리고 갓 이민온 신참자들은 경제적 하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인들의 경우 대체로 이민 1세대들이기 때문에 아직 정착단계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래도 20~30년 전에 이민 온 사람들은 맨주먹으로 장사라도 시작할 수 있어서 빠른 시일 안에 자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가게값이나 렌트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경쟁마저 심해졌기 때문이다. 장사는 고사하고 빈 아파트마저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신참 이민자들의 어려움은 최근 발표된 미국이민연구센터의 이민자 생활실태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는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날이 갈수록 이민자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이민자가 1970년에는 전체 이민자의 26%였으나 2000년에는 40%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은 경제적 문제 뿐이 아니다. 토박이들의 텃세 때문에 당하는 인종차별이 더 큰 문제이다. 미국은 다인종국가이므로 법으로 인종차별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토박이인 백인들은 신참 이민자인 유색인종을 부지부식간에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백인 중에서도 앵글로 색슨계 보다 늦게 온 독일계가 차별을 받았고 그 후에는 아일랜드계가 차별을 받았다. 흑인들이 아시아계를 깔아뭉개려고 하는 것도 미국에 먼저 왔다는 일종의 텃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텃세는 세상살이의 어느 곳에나 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우월감이 우선권으로 나타나는 것이 텃세이다. 순서를 정할 때 줄 앞에 선 사람, 같은 형제 중에서도 장남이 우선권을 당연시하는 것과 흡사할 수도 있다.
이 미국땅에도 한인들이 먼저 이민을 와서 개척한 후 유럽이민을 받아들였다면 백인들이 인종차별을 받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날 한국에서 화교나 외국혼혈인이 차별받았던 일을 떠올리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토박이들의 텃세가 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 이민자들이 살기 힘든 미국인데도 끊임없이 이민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민을 올 수 없는 사람들 조차 멕시코 국경과 캐나다 국경, 카리브해의 바다를 통해 위험을 무릅쓰고 밀입국하는 데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그 풍요를 누리는 「룰」이 있기 때문이다. 룰이 있기 때문에 질서와 안정이 있고 예측과 희망이 있다. 룰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할 뿐이므로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 룰을 짓밟거나 도둑질을 해야 권력을 잡거나 재벌이 되고 그 권력과 금력이 다른 사람의 기회마저 빼앗아가는 그런 희망없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룰은 룰만으로서도 좋다. 비록 개인적으로 성취를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경우 성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남미계나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물어봐도 대개는 “그래도 미국이 좋다”고 하고 자기 나라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이민생활을 말할 때마다 고달픈 이민생활이라고 한다. 사실 이민생활은 고달플 수 밖에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다 토박이 미국인들의 텃세까지 당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미국생활이 고달프다면 정신적, 물질적 스트레스가 더 많은 다른 나라의 생활은 더 고달프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그 [고달픈]이란 수식어를 이민생활에서 떼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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