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밀레니엄 기행 <4> 라틴 아메리카를 가다
▶ 멕시코 <상>
71년만의 정권교체“우리 1억2,000만 멕시코인은...” 지난해 말 71년만의 정권교체에 의해 대통령직에 오른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취임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문제는 멕시코의 인구가 1억명에 불과한데 1억2,000명이라고 한 이유이다. 그것은 캘리포니아 등 미국에 흩어져 있는 2,000만명의 미국내 멕시코계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즉 미국내 멕시코계를 포함시켜 “1억2,000만 멕시코인”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미국에 무언의 압력을 넣은 것이다. 사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미국 남부의 원래 주인으로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들 영토들을 빼앗겼다고 하지만 멕시코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미국내 멕시코계의 목소리를통해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키워나가면서 남들이 마다하는 저임금의 막일들을 도맡아 경제적으로 미국을 지탱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이웃이다.
혁명의 중심지 ‘몰레로
해발 2,500미터의 멕시코 시티를 벗어나 지그재그의 산길을 내려와 남쪽 평지로 향하다 보면 몰레로 지방이 나타난다. 더운 기후로 인해 스페인 영주들이 사탕수수를 재배하던 지역으로 멕시코를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가 무려 2만4,000명의 농노들을 거느린 초대형 하시엔다를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 따라서 농민들에 대한 착취 역시 혹독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이 지역은 러시아 혁명과 함께 ‘땅과 자유’라는 구호를 들고 20세기 혁명의 서막을 연 멕시코 혁명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다.
멕시코가 자신들의 20세기를 자파타로 상징되는 농민혁명으로 서막을 열었다면 이제 멕시코는 또 다른 혁명으로 21세기의 막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혁명은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처절한 유혈의 내전이 아니라 투표용지라는 ‘종이 총탄’에 의한 무혈의 ‘종이 혁명’이다. 즉 지난해 말 보수야당인 국민행동당의 비센테 폭스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멕시코 혁명의 후유증이 진화되고 형식적으로나마 근대적 정치의 틀이 이루어진 1929년 이후 무려 71년 만에 최초의 여야 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구 공산진영보다 오래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장기집권이 막을 내린 것이다.
6년단임 ‘제왕 대통령’멕시코는 혁명 후 혁명의 성과를 제도화하기 위해 농지개혁, 노동자들의 권익 확대, 민족주의적 산업정책 등 개혁적 정책들을 수행해 나갔다. 그 일환으로 1929년 만든 것이 바로 지난 71년간 멕시코를 지배해 온 제도혁명당(PRI)이다. 멕시코는 제도혁명당의 통치아래 국내적으로 개혁 정책들을 수행해 나가는 한편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등 민족주의적 정책을 펴 나갔다. 그 결과 빠른 경제성장, 상대적으로 공정한 분배, 정치적 안정을 이루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모범국으로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면서 부패의 제도화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들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6년 단임제에 따라 제도혁명당 후보들간에 정권교체는 이루어졌지만 사실상의 일당독재 하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제왕 대통령’으로 행세하며 엄청난 부정축재를 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경찰, 관료 등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로 부패가 만연했고 제도혁명당은 노조, 농민 등 사회 각계에 대해서도 이들 지도부에게 특혜를 주고 충성을 맹세 받는, 코포라티즘이라는 주고받기식 거래에 의해 사회 전체를 부패의 연쇄 고리로 몰고 갔다. 게다가 국가주도 경제에 따른 정경유착과 폐쇄적 경제 정책의 부작용으로 경제는 위기가 일상화됐다. 그 결과가 1982년 외채 위기와 외채 모라토리움 선언이다.
경제몰락 한국과 반대 수순이후 멕시코는 미국 시장에의 완전 통합을 의미하는 북미무역자유협정(NAFTA)에 가입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과 개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경제위기를 가속화함으로써 1994년 말 또 한차례의 외채 위기를 가져다 줬다. 게다가 나프타의 주역인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대통령의 정적 암살혐의, 대형 부정부패 의혹까지 겹쳐 제도혁명당은 몰락의 길을 재촉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정권교체이다. 결국 1982년 외채 위기가 ‘멕시코 모델’중 경제모델의 몰락을 의미한다면 이번 정권교체는 나머지 반쪽인 정치모델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박정희 모델이라는 ‘한국 모델’중 1987년 민주화에 의해 정치모델이 먼저 붕괴하고 경제모델은 1997년 외환위기에 의해 나중에 붕괴한 한국에 비교해 볼 때 멕시코는 정반대의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지식인들의 반응은 양면적이다. 우선 정권교체 자체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과거 인권탄압에 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에 대해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멕시코 국민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온 제도혁명당의 멍에에서 벗어나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발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살리나스 전 대통령이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민영화를 강행하며 그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줘 더 큰 부정을 저지른 예를 상기시키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또 설사 폭스 대통령이 개혁을 하려고 해도 의회와 지방정부에서 소수세력에 불과하고 보수적인 시장주의자인 그가 과반수 확보에 필요한 좌파 민주혁명당(의석수 18%)의 협력을 얻어내기도 쉽게 않을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였다. 게다가 정치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제도혁명당이 지난 70년 동안 사회 각 분야에 만들어 놓은 코포라티즘의 뿌리의 저항을 이겨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구절반이 절대 빈곤층정치도 정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 경제적 문제이다. 물론 멕시코가 20%대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등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대적인 경제호황의 대가는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경제 지배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이다. 예를 들어 1999년 현재 멕시코는 인구절반이 절대 빈곤층이며 이는 개방 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즉 코카콜라 중역 출신의 그는 빈부해소와는 거리가 먼 시장주의자인 데다가 설사 그가 빈부해소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예산도 없고 지금과 같은 개방정책과 시장주의를 고수하는 한 빈부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자파타의 동상을 올려다보며 제도혁명당의 비극으로 끝난 20세기 멕시코 혁명에 이어 이번 21세기 멕시코 선거혁명 역시 또 한 차례의 배반된 혁명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다음은 인디오와 자파시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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