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 주필의 서울에서 만난사람 <4>
▶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
박근혜씨 만큼 쓰라린 비극을 당한 주인공도 없을 것이다.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흉탄에 잃었고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에게 피살되었으며 이로 인한 충격으로 동생인 박지만씨가 마약중독이 되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었다. 집안이 산산조각 난 그 와중에서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선 박근혜씨는 국회의원이 되고 한나라당 부총재직까지 맡기에 이르렀다. 그의 정신력은 대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이 박근혜씨를 강인하게 만들었으며 그는 어떤 계기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는가. 박 의원은 본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아버지,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와 자신의 삶의 자세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데 애당초 이 사업이 어떤 계기로 시작된 겁니까.
◇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로부터 20주년이 되던 99년에 역대대통령을 평가하는 시리즈들이 신문에 많이 났었습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발의를 해 각계 원로들로 사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김대통령이 지금도 명예이사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설립을 발의했다는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 아닙니까. DJ는 제3공화국 시절 일본에 납치되어 목숨까지 잃을 뻔한 정치인이었는데요.◇ 그 분(DJ)이 모든 것을 뛰어 넘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겠죠. 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DJ를 잘 아십니까.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이 있습니까.◇ 잘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도 없구요. 공식행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난 적은 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플 텐데요.◇ 물론 지금도 아버님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일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좋게 평가하고 있더군요. 정치인은 시대에 따라 평가 기준도 달라집니다.
― 딸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어느 언론인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하려면 박정희가 만들어낸 시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박정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에 동감합니다. 그 사람을 보려면 그 시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 박 의원은 한나라당 부총재인데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버님은 사심이 없었습니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제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고 정치를 해보니까 지도자가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절절이 느껴져요. 지도자가 사심이 있으면 국민이 불행해집니다.
― 박정희 대통령이 다른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님은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모든 지도자들이 비전을 가지죠. 그러나 말과 실행이 잘 맞지를 않습니다. 아버님은 비전을 제시한 후 그 비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실무를 꼼꼼히 챙기셨습니다. 확인행정을 했었죠. 그리고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누구 봐주고 하는 것 없었습니다.
― 육영수여사 이야기를 좀 할까요. 어머니의 내조 스타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아버님이 일에 너무 몰두해 어머니가 가끔 소외감을 느낀 적도 있죠.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습니다.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정책을 몸으로 실현해 보여야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어머니는 퍼스트레이디가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검소함이라고 생각했었죠.
― 청와대 생활에서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있었죠. 한번은 식사를 하시면서 "우리가 항상 청와대에 사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하시면서 신당동 집에서 살게될 날이 곧 올 거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는데 우리들은 그때 청와대가 영구적인 거주지가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어머니는 청와대에서 떠날 준비를 정신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박근혜 의원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이어 흉탄에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동생 지만군의 마약사건까지 겹치고... 어머니가 저격당한 것을 언제 알았습니까.◇ 어머니가 비극을 당했을 때 저는 프랑스에 유학 가 있었습니다. 몇 달 안 됐었죠. 그런데 어느 날 대사관에서 사람이 뛰어오더니 어머니에게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귀국준비를 해야겠다는 거예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을 흐렸습니다.
― 그럼 귀국해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습니까.◇ 아니죠. 파리 공항에서 알았습니다. 공항 신문가판대 프랑스 신문 1면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읽어보았더니 어머니가 저격을 받고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어머님이 돌아가신데 대한 아버님의 충격과 슬픔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아버님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슬픔이 깊어지면 시로 승화되는 모양입니다. 아버님이 어머님에 대해 쓴 시는 여러 개 있습니다. 구구절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이 비극을 당한 소식은 어디서 들었습니까.◇ 자고 있는데 부속실에서 전화가 걸려 오더니 옷 입고 빨리 나오라는 겁니다. 그랬더니 김계원 비서실장이 아버님이 피살되었다고 알려주더군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쏘았다는 거예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 딸의 입장에서 그 충격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생각되는데. 어떤 치유를 받아 그 고통을 참고 넘기셨습니까.◇ 그 충격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치유 받은 적도 없고 정신과 의사의 상담 도움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의연해야겠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일기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 지만군의 마약 접촉과 부모님의 비극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나 어머니 두분 중에 한 분이 돌아가셨고 그것도 흉탄에 말입니다. 그래도 견디기 힘든데 부모님이 모두 흉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로서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었죠.
― 박지만씨는 지금 뭘 합니까. 가족끼리 자주 모입니까.◇ 지금은 동생(박지만)이 산화철 관계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에 굉장한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사 때마다 만나고 통화는 자주 하죠.
― 박 의원은 어떤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까.◇ 지난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지원 유세한 것이 인연이 되었죠. 곧 이어 98년 4월 경북 달성에서 보선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이 꼭 이겨야 한다면서 저를 추천한 겁니다.
― 정계에 몸을 담아보니 어떻습니까. 정치 할 만 합니까.◇ 저는 아버지 옆에서 정치하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 본 사람입니다. 정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지 피부로 실감해 절대 정계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내 목소리를 내려면 국회에 진출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특히 IMF사태 때 한국의 경제 건설을 위해 아버님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싶어지더군요.
― 학교 다닐 때 원래는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까. 국회의원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 같고.◇ 저는 대학교수 되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프랑스 유학도 갔었지만.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갑자기 퍼스트레이디 대역을 맡게 되는 바람에 생활패턴이 180도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두 분이 살아 계셨으면 제가 정계에 진출했을 리가 없죠. 두 분의 비극이 저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셈이죠.
―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남자들과 데이트하기 도 힘들었을 텐데요. 남자와 데이트 해본 적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 한번도 데이트 해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 여학생 시절에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시집 보내려는 생각을 했을 텐데요.◇ 한번도 데이트 해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 졸업 할 때쯤 해서 시집 보내는 문제를 굉장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의논도 했었던 모양입니다. 부모들 입장에서는 나이 먹은 딸을 어떻게 시집 보내느냐가 숙제 중의 숙제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 문제를 내 앞에서 끄집어 낸 적은 없습니다.
― 앞으로 결혼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혼자 평생 지낼 생각이십니까.◇ 결혼 안 할 겁니다. 그렇다고 나는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어머님, 아버님의 비극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결혼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그 다음에는 기념사업이요 장학회사업이요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49세)... 또 혼자 지내면서 보람 있는 일을 할 것이 너무 많아요.
― 헌법이 고쳐져 정부통령제가 생기면 박근혜씨가 어느 당의 부통령 후보로 영입된다는 소문도 나돌던데요.◇ 선거 때가 가까워오면 별 소문이 나돌게 마련입니다. 그런 소문 중의 하나입니다.
― 박 의원은 야당 부총재이지만 야당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야당 의원이면 꼭 머리에 띠 두르고 농성하거나 소리 질러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구시대 스타일이고 지금은 발언내용이 중요합니다. 발언내용이 야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갖고 있습니까.◇ 항상 국민의 편에 서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악기는 좋은 소리를 내야하고, 요리는 맛을 내야하고, 정치인은 국민 편에서 소리를 내야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소신이 중요합니다. 그건 제가 아버님에게 배운 것이기도 하구요.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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