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밀레니엄기행(3)
▶ 개방정책의 빛과 그림자: 쿠바(하)
80년대까지만 해도 쿠바는 기본욕구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정책 덕으로 국제연합(UN)의 평가에 따르면 평균적인 삶의 질에서 중남미 최상위에 속하는 나라였다. 특히 의료와 교육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했다. 그러나 소련 동구 몰락 후 쿠바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과거 소련이 쿠바의 설탕을 비싸게 사주고 싼값에 석유를 팔아 줌으로써 제공해 주던 연 20억달러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이번 기회에 카스트로 정권을 몰락시키겠다며 외국 기업이라도 미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기업은 쿠바와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제정함으로써 쿠바를 더욱 고립시켰다. 이에 쿠바는 중국으로부터 자전거 20만대를 들여오고 아바나의 명물인 350인승 초대형 버스, 즉 장거리용 대형 트럭에 기차 객차 비슷한 것을 매단 버스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경제의 달러화…환전 불필요
쿠바는 이제 북한과 마찬가지로 최저점을 지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자구노력도 노력이지만 카스트로가 ‘비상 시기’를 선언하고 과감한 경제개혁을 단행한 것에 연유한다. 즉 제한적이지만 사영기업을 허용하고 외국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관광을 대폭 개방했기 때문이다. 달러를 직접 통화로 사용하는 ‘경제의 달러화’까지 허용했다. 특히 관광부문은 엄청나게 성장해 지난해만 해도 200만명의 관광객들이 쿠바를 찾았다. 그리고 경제제재는 미국 이외에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해 외자 유치가 늘고 있다.
쿠바에 도착해 놀란 것은 쿠바 여행에 전혀 환전이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모두 달러로 거래가 되기 때문이다. 택시의 경우 아예 미터 자체가 달러로 되어 있다. 경제의 달러화 덕분이다. 유럽과 캐나다 관광객이 다수이고 정작 미국 관광객은 경제제재 때문에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광용 통화는 달러라는 사실이, 그리고 반미의 기수인 쿠바가 다른 나라들도 별로 하지 않는 달러의 공식 통화화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역설적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호텔 등에서 모든 신용카드를 받지만 미국에서 발행된 카드는 안 받는다는 것이다. 경제제재로 결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기업 통제-중과세
자영부문 역시 고용인 수를 기준으로 경제의 약 7%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자영농장으로부터 아바나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노점 서점들, 공예 및 민속품 노점, 거리의 화가로부터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자영업들이 사방에 눈에 뜨인다. 그러나 이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화되지 않도록 국가의 통제가 계속되고 있다. 자영 레스토랑 경우 테이블 3개에 의자 12개 이하로 통제하고 있으며 매상의 50% 이상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중과세로 이들의 팽창을 견제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제품 진출 활발
주목할 것은 쿠바에도 한국 제품들의 진출이 눈부시다는 점이다. 낡은 일반 택시가 아닌 호텔 주변의 고급관광 택시들은 상당수가 현대의 그랜저, 엘란트라 등 한국차이다. 혁명 이후에는 소련제 자동차들이 늘어났다가 최근에는 한국 차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해변 휴양지인 바라데로로 가
는 시외 도로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대형 광고판들이 열 개정도 서 있는데 그 중에는 엘지의 광고판도 있다.
물자·취업난 , 매춘 급증
그러나 최근의 경제개혁이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달러 부문과 일반 부문간의 격차와 갈등이다. 물론 멕시코를 포함해 제3세계 여행시 부딪치는 걸인들을 쿠바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경우 한달 월급이 10달러에서 최고 25달러인 것이 쿠바의 현실이다. 한 택시
기사는 20인치의 한국산 컬러 TV를 사기 위해 6년을 저금했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달러 통용상점에는 없는 물건들이 거의 없이 진열되어 있지만 일반인용 가게에는 선반이 거의 비어 있었다.
이 같은 격차는 쿠바사회를 균열시키고 있으며 쿠바 최고의 명문대인 아바나대 졸업생들이 관광안내원, 심지어 호텔 청소부로 집중되는 기형적 현상을 낳고 있다. 방에 놓은 팁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써 놓은 청소부의 감사 편지를 읽으며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옛 쿠바의 불명예였던 매춘 역시 급속히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바라데로의 경우 얼마전 카스트로의 특명에 의해 일제 소탕작전을 벌였는데 무려 7,000명의 매춘부들이 적발되었고 비호 경찰들도 대거 구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바나의 밤거리를 달리다 보면 여전히 밤거리의 꽃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쿠바는 경제 회복을 위하여 관광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외자 유치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으나 그럴수록 달러 부문과 일반 부문의 격차는 벌어지고 개방에 따른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 쿠바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이다.
호세 마르티, 체 게바라, 카스트로의 투쟁을 통해 쿠바는 오랫동안 꿈꾸어온 강대국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자주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국 경제적 낙후였고 이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어렵게 획득한 자주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약소국이 자주권을 지키면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미국판 실향민 마이애미의 쿠바계
쿠바계는 멕시코계에 이어 미국내 라틴계중 가장 인구가 많다.
그러나 멕시코계가 주로 캘리포니아에 모여 있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어서 민주당을 지지한다면 쿠바계는 주로 플로리다주, 특히 마이애미에 모여 있고 한국의 실향민처럼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매우 보수적이고 공화당을 지지한다. 이 같은 차이가 상당히 일사불란하게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아프리카계와 달리 라틴계를 정치적으로 하나로 묶기 어려운 원인이다. 또 이들이 자신들을 라틴계나 히스패닉 등 하나로 뭉뚱그려 부르는 것에 반대하여 멕시코계, 쿠바계 등으로 불러주기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이다.
어쨌든 이들 쿠바계는 자신의 영향력을 통해 경제제재 등 미국의 대쿠바 강경노선을 강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영향력은 이제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즉 많은 미국의 기업들이 경제제재 조치에 발이 묶여 황금시장인 쿠바를 유럽 국가들에 빼앗기고 있는 것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으며 경제제재 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파월 신임 국무장관이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제제재가 외교정책에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라고 밝히고 나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 해제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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