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밀레니엄 기행[1]
▶ 혁명...빈곤... 그리고 삼바물결
멕시코 시티를 떠나 쿠바로 향해 카리브해 위를 나르는 쿠바항공 비행기 속에서 나는 워크맨으로 루빈 블레이드의 ‘아메리카를 찾아서’라는 테이프를 들으면서 놈 촘스키의 ‘Year 501’ 이라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그 명성을 ‘남용’해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해온 비판적 미국 지식인의 대표주자인 촘스키의 이 책은 ‘정복은 계속되고 있다’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컬럼버스의 미주대륙 정복 501년이 되는 1993년 현재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라틴음악의 정수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살사 음악의 두 왕국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중의 하나인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하버드대학 법대를 나온 지성파 가수인 루빈블레이드의 이 명곡은 유럽 정복 이전의 잊혀진 아메리카를 찾는다는 메시지를 강한 살사 비트에 실어 절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21세기를 맞아 아메리카 대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찾아 흔히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나라중 대표적인 나라들인 멕시코, 쿠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를 가로질러 두 달간의 긴 여행에 떠나게 되었다. 촘스키의 책제목과 블레이드의 노래 제목을 결합시켜 변형시킨다면 ‘뉴밀레니엄-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라고나 할까?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미주대륙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는 지리적인 근접성에서 연유하는 미국과의 뗄 수 없는 오랜 역사적인 악연에두 불구하고 문화, 정치 경제적 위상 등 여러 면에서 미국과 거리가 먼 나라들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날로 늘어나고 있는 라틴계 인구의 폭발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한인 커뮤니티로 하여금 이들의 뿌리인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 거쳐 입국체게바라, 카스트로, 시가, 사탕수수, 럼주, 그리고 삼바음악의 나라.
첫 목적지인 쿠바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대개 이런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70, 80년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 특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쿠바혁명을 주제로 쓴 ‘양키야, 들으라’라는 충격적인 책제목이 떠오를 것이다. 아바나 공항에 다 왔으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승무원의 방송을 듣는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은 북한과 쿠봐와의 색다른 공통점이었다. 그것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사실이다.
즉 지척에 놓인 북한을 가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중국을 돌아 먼 길을 가야하듯이 마이애미로부터 80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쿠바를 미국에서 가려면 멕시코나 캐나다로 돌아가야 한다.
’미국의 환락의 섬’에서 혁명 이후 ‘미국의 콧잔등의 종기’로 변해버린 쿠바를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의 경제 제재 때문이다.
특히 미국시민의 경우 법으로 쿠바 여행이 금지되어 있어 아직 이 문제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지만 제3국을 통한 여행도 적발되는 경우 법적으로는 거액의 벌금을 물 수도 있다는 것이 쿠바여행 안내책자의 설명이다. 사실 미국시민이 아닌 나 역시 미국에서 쿠바를 가기 위해서는 멕시코 시티를 거쳐야 했다.
의외로 간단한 비자확인아바나 공항에 내리자 입국 수속은 우리와 정식적인 외교관계가 없는 사회주의 국가로는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멕시코 시티의 쿠바 여행사를 통해 받은 쿠바 여행비자를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공항에 마중나온 밴을 타고 아바나 시내로 향하는 길은 1960년대의 한국을 연상시키는 낙후한 경제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특히 운전사는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차를 세워 사복을 한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 서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일종의 체크포인트로서 사회주의의 통제체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구아바나 곳곳 공사 한창도착한 곳은 카리브 해가 창가로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고층 호텔.
호텔에서 짐을 풀고 여행안내 책을 보고 미리 연구해 놓은 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구아바나시로 가자고 했다.
구아바나시에 오랜 유적들과 상점들이 모여 있다면 신아바나시는 혁명 후 세워진 행정 부서들과 최신 시설의 호텔들이 모여있다.
구아바나시를 향하자 도로 왼쪽으로 카리브해가 넘실대며 방파제를 매섭게 때려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낡은 아파트들이 사열을 하듯이 도로를 따라 서있었는데 군데군데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만큼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컬럼버스의 옛 자택.
컬럼버스가 소위 발견한 것은 신대륙이 아니라 그 앞의 작은 섬 쿠바였고 쿠바에 대해 그는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감탄했다.
전형적인 스페인풍의 이층 저택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잘 보전되어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컬럼버스의 미주정복은 50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미국의 경우 컬럼버스의 날 기념행사가 자신들의 오랜 전통에 대한 모독이라는 인디언들의 거센 항의로 몇 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는 등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컬럼버스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즉 컬럼버스와 인디언 대표들과 가상논쟁을 벌인다면 야만적인 인디언들을 문명화시킨다는 자신의 소명이 옳았다고 아직도 주장할 것인가 궁금했다.
권력 지배층은 백인들쿠바는 미국, 브라질과 함께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이 인디언을 서구 문명에 굴복시키는데 실패해 원주민을 거의 멸종시키고 노동력으로 아프리카노예를 데리고 온 대표적인 나라이다.
그래서 인구 다수를 아프리카계와 혼혈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카스트로를 비롯한 지도층은 여전히 백인들이다. 따라서 쿠바가 좁게는 반미, 넓게는 강대국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의 선두국가로 자부심을 갖고 있으나 컬럼버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쿠바 정복이 없었다면 지금의 쿠바, 카스트로를 비롯한 현재의 쿠바 지도세력도 존재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컬럼버스의 저택을 바라다보며 이같은 딜레마와 관련, 카스트로를 비롯한 쿠바 정부가 컬럼버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증을 지울 수 없었다.
좁은 아바나 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느낀 것은 가난한 가운데도 너무도 낙천적인 이들의 밝은 모습이었다. 이는 특히 경쾌한 살사 음악에 잘 나타나는 바,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카리브 티셔츠 차림의 거리의 악사들이 신나는 살사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발걸음을 떼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디오와 스페인계의 혼혈이 대부분을 이루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와 달리 쿠바는 아프리카계와 정열의 스페인계의 혼혈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기막힌 미인들이 아프리카계 특유의 탄력 넘치고 율동감 있는 걸음걸이로 지나가는 것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
<다음은 게바라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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