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와르제네거가 내년에 있을 캘리포니아주 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현직인 그레이 데이비스에게 도전장을 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다시 한번 배우와 정치가의 상관관계가 화제가 되고 있다. 배우와 정치가란 모두 쇼맨인데다가 남의 인식에 기대는 사람들이어서 한통속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데 슈와르제네거의 부인으로 NBC-TV의 앵커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골수 민주당원들인 케네디 가문 소속이다.
둘 다 쇼맨이긴 하지만 배우가 정치가로서도 성공한 경우는 로널드 레이건 하나밖에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기 동네 카멜의 시장에 지나지 않았고 가수 소니 보노는 팜스프링스 시장을 거쳐 연방하원에 진출했으나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이들 외에도 할리웃 스타로서 계속 정치판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에 휩싸였던 사람들은 워렌 베이티와 제임스 가너 및 찰턴 헤스턴 등이 있다. 이들 중 헤스턴은 전국 총기연합회 회장으로서 정치가는 못되고 압력단체장 노릇으로 만족하고 있다.
영국의 스타로 정치가가 된 사람은 여배우 글렌다 잭슨이다. 오스카 주연상(’사랑에 빠진 여인들’ ‘터치 오브 클래스’)을 두 번이나 탄 잭슨은 철저한 진보파로 지난 92년 선거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철두철미한 노동당원이어서 골수보수파인 레이건을 지극히 혐오한 사람이다. 잭슨은 "레이건이 배우였다는 사실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야말로 대처의 정신적 남매"라고 야유했었다.
레이건은 B급 배우로 배우 시설부터 배우노조위원장을 하는 등 정치성이 짙었던 사람이다. 그는 1960년 캘리포니아주 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수년간을 주도면밀하고 끈질기게 정치입문을 위해 길을 닦은 끝에 지사직에 오를 수 있었고 마침내 대통령까지 됐다.
체질상 공화당이 싫은 나는 도무지 특색이 없는 배우 레이건이 대통령으로서 성공한 일을 생각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는 연기도 신통치 않았는데(가장 훌륭했던 것은 ‘킹스 로우’에서의 연기) 마지막 영화 ‘살인자들’에서는 킬러 리 마빈으로부터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다.
한국의 연예인들 중에도 전국구라는 해괴한 제도 때문에 정치가가 됐던 사람들이 있다. 이낙훈, 최불암, 이순재, 신영균 등이 그들. 이주일과 신성일은 떳떳이 선거에서 이긴 배우들. 나는 이주일이 의원직을 그만 둔 뒤 LA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정치가 코미디 보다 더 힘든 일"이라며 다시는 정치생각이 없다고 고개를 내졌던 모습이 생각난다. 또 지금 문화관광부 장관을 하고 있는 김한길씨도 쇼맨 출신이라 할 수 있겠다.
정치분석가들은 슈와르제네거는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하기도 전에 점수를 깎였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대변인을 통해 지난 6일에는 가족과 영화 일로 내년 선거에 안 나온다고 했다가 하루 뒤 그 말을 뒤집었다. 결단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또 이들은 슈와르제네거가 연예지 프리미어에 보도된 자신에 관한 좋지 않은 글에 대해 보인 격한 반응도 치열한 선거전을 치러야 하는 정치 후보인으로서의 자격미달 행위로 보고 있다. 프리미어가 슈와르제네거를 혼외정사자요 여자를 잘 주무르는 치한이라고 보도한 뒤 슈와르제네거는 이 잡지에 경고 편지를 보낸 바 있다. 그는 또 데이비스의 선거전략가 개리 사우스가 이 기사를 복사해 팩스로 발송하자 그에게도 경고장을 보냈는데 전문가들은 정치판에선 관행인 이런 정도 일도 참을 배짱이 없으면 선거에 안 나오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LA타임스는 며칠 전 ‘정치무대에서 성공한 배우는 드물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슈와르제네거의 지사 출마의 타당성과 문제점 등을 보도했다. 이 글에서 전 캘리포니아 지사 피트 윌슨의 광고담당자였던 단 시플은 "유명 연예인이 선거에 나오려면 사전에 충분한 자기 변화와 변이의 시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명하고 희귀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명백한 정치철학이 있을 때에만 출마를 고려하라는 것이다. 그때 나와도 이길 보장은 없지만.
슈와르제네거는 당초 2006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할 마음을 먹었으나 최근 에너지 비상사태가 터지자 데이비스에게 도전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LA타임스는 데이비스의 인기가 높아 슈와르제네거가 내년에 나와봐야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최근 자기 영화가 잇단 흥행실패를 하면서 액션 스타로서의 한계점에 도달한 슈와르제네거는 같은 업종인 배우에서 정치가로의 전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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