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프레이저 명승부, 맥없는 복싱현실과 강한 대조
무하마드 알리는 자신의 전성기에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다.
"내가 사라지면 복싱도 묘지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알리가 사각의 링에서 퇴장한 후에도 복싱은 죽지 않았다.
알리의 후계자 래리 홈스는 수준급의 헤비급 챔피언이었고 마이크 타이슨은 논란을 몰고 다녔지만 그의 전율적인 타이틀매치는 항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모았다.
마블러스 마빈 해글러, 슈가 레이 레너드, 로베르토 두란, 토머스 헌스도 인상적인 파워와 스피드 그리고 테크닉의 결합으로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복싱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즐겨 화두에 올렸다.
하지만 요즘 복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과히 많지 않다.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중환자실에 있다.
3대 타이틀 가운데 WBC와 IBF등 2개를 갖고 있는 레녹스 루이스는 한 수 아래의 복서들을 상대로 방어전을 계속하고 있고 이벤더 홀리필드는 지난 주말 조연급 주먹인 자니 루이스에게 무참히 다운을 당하면서 심판전원일치 판정패로 WBA 타이틀을 빼앗겼다.
라이트급 통합챔피언인 로이 존스 주니어는 현역 최고의 복서로 손꼽히고 있지만 자신의 체급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다. 셰인 모즐리와 펠릭스 트리니다드는 뛰어난 복서들이지만 서로를 기피하고 있다. 프린스 나심 하메드의 쇼맨십도 이제는 싫증이 난 상태이고 오스카 데 라 호야는 복서보다는 가수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한다.
복싱도 마찬가지로 과거같지 않다.
하지만 ‘세기의 대결’은 여전히 그 명성 그대로 남아 있다.
강산이 세 번 변하고 한 세대가 지났지만 위대한 승부의 드라마는 아직도 복싱팬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알리-프레이저 1차전이 벌어진 것은 꼭 30년 전인 지난 1971년 3월 8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전설적인 슈가 레이 로빈슨이 수없이 많은 대전을 벌였던 곳이지만 알리-프레이저 대전 만큼 복싱의 열기가 뜨거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링사이드에서 라이프잡지를 위해 포즈를 취했고 다이애나 로스는 현란한 색깔의 가운으로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보라색과 레몬색의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과 밍크코트와 다이아몬드로 휘감은 여성들...
이들은 모두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운집한 것이었다.
"무패를 기록하고 있던 두 명의 복서가 격돌했다. 알리와 프레이저는 모두 복서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 복싱담당 사장 해리 마크슨은 말한다.
군입대 거부로 3년여 링을 떠났다가 컴백, 제리 쿼리와 오스카 보나베나를 격파한 알리는 당시 29세로 31승 무패 25KO승을 거두고 있었고 27세 조 프레이저는 26승 무패 23KO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알리와 프레이저는 각각 당시로는 기록인 250만달러의 파이트머니를 받았고 전세계 중계수입도 3,000만달러를 육박했으며 링사이드의 입장료는 150달러를 호가했었다.
하지만 흥행규모나 파이트머니는 경기의 상징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리는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복서였지만 미국에서는 월남전에 반대하는 흑인회교도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징집을 거부했다고 나를 싫어 한다. 어떤 사람은 나의 종교 때문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가 흑인이기 때문에 싫어 한다"
알리는 이렇게 내뱉었다.
반면에 프레이저는 기존의 가치관을 상징하고 있었다.
계체량에서 프라이저는 203.5파운드, 알리는 215파운드였다. 5피트 11.5인치였던 프레이저는 신장에서도 알리에게 3인치이상 열세였다.
그러나 링에서 벌어진 상황은 달랐다.
알리는 쉬지 않고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는 프레이저의 파상 공격앞에서 나비같이 날 수도 벌처럼 쏠 수도 없었다. 11라운드 프레이저의 레프트 훅은 알리를 비틀거리게 했고 15라운드초반에는 온몸을 실은 프레이저의 레프트 훅이 알리의 오른편 턱에 작열, 알리는 캔버스로 침몰했다. 곧 일어났지만 알리는 자신이 패한 것을 알았다. 알리는 코너에게 "여기서 빨리 나가자"고 말했다. 심판은 프레이저에게 전원일치 판정승을 내렸다.
알리는 병원으로 달려가 턱 X-레이를 찍었고 프레이저도 신장부상과 과도한 체력소모로 입원해야 했다.
’떠버리’’ 알리는 "내가 승리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성취한 것이다"라며 프레이저에게 경의를 표했다. 두 복싱 거인의 격돌은 4년 후 또 하나의 인상적인 명승부 ‘마닐라의 드릴러’로 이어졌다.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세기의 대결’은 아직도 그 힘찬 박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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