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 주필의 서울에서 만난사람2
▶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지금 한국 정계에 떠도는 ‘대세론’의 주인공이다. "야당에서는 이회창씨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대세론의 내용이다. 그는 지난번 선거에서 겪은 ‘이인제 파동’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표도 잃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어프로치를 보였다. 인터뷰 동안 DJ나 YS, JP 이야기가 나오면 신중한 표현을 골라 썼고 될 수 있는 대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내용은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때는 이들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고는 곧 오프 더 레코드를 걸었다. 이 총재와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플라자호텔 3층 식당 별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되었으며 총재 특보인 고흥길 의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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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뵈는 것보다 인상이 부드러우신 데요.◇ 말씀 마십시오. 선거 때는 안경테도 바꾸어보고 전문가 불러 자문도 받았었죠. 부드럽게 보인다는 게 쉬운 게 아닙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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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선하셨습니까? 지난번 선거에서.◇ (웃으면서) 좀 천천히 하십시다. 말못할 이야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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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대통령을 만났더니 당시 이 총재께서 이인제씨를 직접 만나 타협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하던데요.◇ 그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 상황에서 내가 더 급했겠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더 급했겠습니까. 나는 이인제씨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할 만큼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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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씨를 직접 만났습니까? 안 만났습니까?◇ 왜 안 만났겠습니까. 비밀장소에서 만나 별 얘기 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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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인제 후보를 안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인제씨가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기 직전에는 못 만났죠. 거기엔 또 이유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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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입니까?◇ YS가 이인제씨를 설득했다는 거예요. 출마하지 않기로. 이인제씨 자신이 대통령인 YS에게 출마포기를 약속했다니까 나는 철석같이 믿었어요. 문제가 잘 해결되는 줄 알았죠. 아마추어 정치인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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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씨네 집을 찾아가서라도 협상했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고 YS는 말하던데요.◇ 당시의 비화를 지금은 다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회고록을 쓸 때 모든 진상을 밝힐 예정입니다. 결과적으로 입후보자인 나의 책임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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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떤 정치를 해보려고 마음먹었습니까?◇ ‘정상성의 회복’ 정치입니다. 김영삼 정권이 민정이기는 했으나 역시 과도정부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권위주의, 획일주의, 정부 주도가 여전했습니다. 저는 이 풍토를 시정하려고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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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어떻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까?◇ (웃으면서) 어허, 이거 또 내가 DJ를 비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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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총재가 정부 비판하는 것 당연한 것 아닙니까?◇ 나는 국민들 눈에 야당 총재와 대통령이 싸우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인신공격은 피합니다. 김대중씨는 지금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어요. 통치에도 원칙이라고는 전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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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까지 받은 민주투사 출신인데 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을까요?◇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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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자민련에 사람 꿔주는 게 좋은 예입니다. 이건 코미디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그런 변칙을 시범 보이면 안됩니다. 민주투쟁 해온 정치인이 장난하는 시범을 보이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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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에 대한 지나친 우려 때문에 변칙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반드시 여대야소 상황에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그 사고방식이 비민주적입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여소야대를 만들었으면 그 현실 위에서 정치를 해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지도자의 자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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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지닌 문제점들이 무엇입니까? 꼭 김대중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고방식입니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대통령 자신이 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아요. 정치게임 하는 것을 무슨 큰 능력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니 밑에 사람들이 권모술수 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말을 바꾸지 말고 원칙을 시범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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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잘한 것은 무엇입니까?◇ 취임초기 외환위기 수습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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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과 작년에 단독회담을 가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까?◇ 4대 부문 개혁에서 기업 금융개혁을 지난해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따졌죠.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과 약속을 믿지 않는 게 문제다. 그렇게 충고했습니다. 완료하겠다고 한 것 치고 뭐가 된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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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로 불리는 현 정부에서 왜 개혁이 안 되는 겁니까?◇ 개혁은 자기 몸도 다칠 각오를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겁니다. 나는 안 다치고, 내 측근도 보호하고, 내 당에 불이익 되는 것 빼고 개혁하려니까 개혁이 될 리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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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연합이라는 단어가 요즘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는데 JP(김종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DJP연합은 우리 역사를 전진이 아니라 후퇴시키는 하나의 게임입니다. 보수주의자인 JP가 어떻게 DJ와 손잡을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의 어디를 봐도 DJ와 공통분모를 가지지 않은 사람인데 연합이요, 공조요 외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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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나 내각제 추진하려고 DJP연합하는 것 아닙니까.◇ DJP연합에 군소 정당 엮으려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 내각제는 안됩니다. 정경유착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제도가 바로 내각제입니다. 더구나 남북이 앞으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판국에 내각제 해 가지고 국민의 힘이 집결되겠습니까. 모든 것이 6월이면 밝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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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거에서 영남에서 제3후보가 한사람 나오도록 하여 한나라당의 표를 깎아 먹으면 DJ정권의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여당에서는 생각하는 모양이던데요?◇ 뭐, 이회창 이미지 깎기 작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야기 나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라는 것이 꼭 사람보고 표 찍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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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3김 개인은 욕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3김’식 정치가 문제입니다. ‘3김’식 정치가 남긴 게 무엇입니까. 지역주의, 보스(Boss)주의입니다. 농간 정치죠. 호남표, 충청표 어쩌고 하는 정치가 막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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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강한 정부’를 어떻게 해석하고 계십니까?◇ 강한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부를 의미합니다. 정부가 깨끗해야 신뢰성이 생기는 법이고 도덕성이 결핍되는 한 강한 정부가 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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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겁니까?◇ 대단히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괜찮다는 거예요. 상황판단 자체를 잘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전문가나 학자들 붙잡고 물어 보십시오. 전부 다 위기라고 입을 모으는데 정부는 딴소리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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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유명한 교수가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을 만났을 때 ‘싱가포르 경제 기적’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이광요씨가 뭐라고 대답했는줄 아세요? Clean Government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깨끗하면 경제난은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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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한 때 스케줄을 바꾸어 가며 푸틴이 이 총재를 만난 것으로 아는데 무슨 얘기가 있었습니까?◇ 북한을 너무 고립시키지 말라고 당부하더군요. 그리고 시베리아 철도사업에 한국이 참가하는데 야당이 적극 도와달라고 합디다. 아주 영민한 사람 같았습니다. 한국에 대해 공부 많이 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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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 불교계의 어느 지도자가 "이회창씨가 정권 잡으면 인정사정 없이 정치보복 할 것"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는데 어떻게 받아 들이셨습니까?◇ 그분들이 저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정치보복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나의 정치철학입니다. 한국의 정국이 항상 불안한 것도 정권 잡은 사람들이 정치보복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보복 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정권 내놓기가 무서워지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퇴진 후의 안전장치를 또 찾게 되고 여기서 무리가 생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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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드러난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될 것을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선을 대려고 접촉하는 모양이던데요?◇ 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을 접촉하고 있습니다. 여당에서는 이회창 이미지 흐리기 작전을 펴고 있죠. 중상모략이 보통이 아닙니다. 입에 담기도 거북한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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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선거에서는 자제 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괴로웠을 텐데 이제는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었는지요?◇ 평생 제일 괴로웠습니다. 정치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느낀 점도 많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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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나 신문기자 만나서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기는 최근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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