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즈1-서울에서 만난사람
▶ 김영삼 전대통령 재임중 비화, 현시국 인터뷰
김영삼 전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에서 가진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은 지난 94년 6월 평양 등 북한의 주요 도시를 폭격하여 초토화시키려 했으며 주한 미군가족과 미국시민들의 철수를 발표하려 했으나 클린턴 대통령과의 한밤중 통화에서 극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가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한번 혼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김 전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국지전 아닌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 강력히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만약 그가 서울에 온다면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8일 본보 이철 주필과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는 대통령 재임시 일어났던 비화와 DJ, 이회창, 이인제씨와의 관계, 아들 문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등 광범한 문제에 대해 이례적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았다.
김영삼 전대통령 인터뷰김영삼 전대통령과의 만남은 어렵게 이루어졌다. 그는 상도동 자택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신문이 워낙 거짓말을 잘해 요즘 내가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라고 첫마디를 꺼냈다. 기자는 YS가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았던 80년대 초에도 상도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상도동 그의 응접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실이다. 비좁아서 이인제씨가 어떻게 YS에게 큰절을 했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매우 건강해 보였다.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YS는 "등산과 배드민턴"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월28일 상오 10시부터 1시간20분 동안 진행되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습니까.
◇자유인이 되는 게 내 희망이었습니다. 지방여행도 하고 붓글씨도 쓰면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죠.
-지금 생각하시던 대로 되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첫째 방문손님이 너무 많아 바쁩니다. 또 나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 일들이 생겨요.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퇴임했는데도.
-청와대에서 물러나신 후 아는 사람들에게 배반감 같은 것을 느끼신 적도 많았을텐데요.
◇여러 건 있죠. 사람은 의리가 중요합니다. 인간의 기본은 의리입니다.
-경험에 비추어 정권 말기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대통령이 어떤 점을 경계해야 됩니까
◇우리나라 고위 관리들은 그 정권에서 한자리하고 영화를 누렸는데도 물러날 생각을 안 하고 다음 정권에서 또 한자리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정권 말기가 되면 현정권에 충성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다음 정권을 쥘만한 사람에게 선을 대고 뜁니다. 이러니 되겠습니까.
-거짓말 보고를 하고 정보를 뒤로 빼돌리는 겁니까
◇그럼요. 어디 선을 댈 데가 없나 두리번거립니다. 이게 일을 망치는 겁니다.
-그 사람이 더블플레이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
◇몰랐죠. 내 앞에서는 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만 하고 돌아서서는 딴 짓 하는 겁니다. 놀랐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가 그랬습니까. 김태정 검찰총장이 …
◇(손을 저으며) 나는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들 있었어요. 미국을 보세요. 얼마나 깨끗합니까. 어느 정권에서 주요직을 맡았으면 물러난 후에는 교수를 하거나 연구소 같은 데서 일하잖아요? 이쪽 정권에 붙었다가 저쪽 정권에 붙고 하는 일이 없습니다. 일본도 파벌정치지만 파벌을 쉽게 떠나 왔다갔다하지 않습니다.
-이회창씨가 지난번 선거에서 낙선한 결정적인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나를 욕한 겁니다. 그 바람에 경상도표가 떨어져 나갔어요. 신문에 광고까지 내 나를 비판했으니…
-이인제씨를 끌어안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선됐죠. 한 100만표 차이로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이인제씨 문제에 관해 충고를 주셨습니까.
◇했죠. 직접 찾아가서 꽉 붙잡고 사정해 보라고 말했죠. 이인제씨 집에 하루종일 머물면서 내가 당선되면 총리자리라도 주겠다고 하고 매달렸으면 이인제씨도 생각이 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직접 찾아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 협상하려고 했으니….
-이회창씨가 왜 그랬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감이 없어요. 손에 뭘 쥐어주고 이거다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니까.
-감의 정치란 어떤 것입니까.
◇결정적인 순간 판단을 잘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참모 말만 들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본인에게 그런 능력이 있어야 감의 정치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인제씨는 왜 기를 쓰고 입후보한 겁니까.
◇인기를 믿고 그렇게 한 거죠. 당시 이회창씨보다 인기가 높았으니까요. 그러나 여론조사만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죠.
-대통령 재직시 김일성과의 회담이 무산된 것을 제일 아쉬워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일성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까.
◇감군 문제를 끄집어내려고 했었죠. 남북한이 군대를 육성하는데 너무 많은 예산을 쓰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가난한 것도 군대 먹여 살리느라고 그렇습니다.
-또 다른 구상은 없었습니까.
◇휴전선에서 양쪽 군대를 일정거리 이상 후퇴시키는 것과 남북한 수뇌 직통전화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더라면 김일성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남한측에 상당한 양보를 했을 겁니다. 당시 북한이 급했거든요.
-무슨 뜻입니까.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려고 했죠. 김일성은 6.25때 만주로 피난간 적이 있기 때문에 뼈아픈 추억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미국이 한번 싸우자고 덤벼들면 무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한반도에서 정말 전쟁이 일어날 뻔했었습니까.
◇그랬습니다. 주한 미군가족과 미국인들을 모두 철수시키는 계획을 레이니 대사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겠다는 겁니다.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했죠. 미국인 철수령 발표는 절대 안된다구요.
-미국이 진짜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었습니까.
◇완전히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항공모함과 순양함이 다 출동했죠.
-미국은 핵발전소가 있는 영변만 폭격하는 국지전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평양까지 쑥밭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클린턴이 그렇게 이야기 하더라니까. 그래서 나는 절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했죠. 국지전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폭격하는 미군기에 북한 대공포대가 가만 있겠습니까. 포문을 열게 되죠. 그렇게 되면 미국은 북한의 대공포대를 침묵시켜야 되고. 그 때엔 저절로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겁니다.
-당시 주한 미군가족 철수령이 내려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가 레이니 대사에게 단단히 일렀어요. 당신네가 그것을 발표하면 여권 가진 한국인들은 앞다투어 해외로 도피할 것이고 외국자본과 외국회사가 다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공황이 오게 되고 국내적으로는 각 분야에서 대혼란이 일어나게 된다구요. 결국 막는데 성공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초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북한을 초토화시키겠다는 거예요. 지금 혼내지 않으면 북한이 무슨 일을 나중에 저지를지 모른다면서 말입니다.
-당시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생각에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은 지금도 갖고 싶어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곧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김정일이 서울을 방문한다면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김정일이 목숨을 걸고 서울에 올 리야 없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을 지내신 입장에서 역대 대통령을 평가해 주십시오.
◇이승만 대통령은 3선 개헌만 안 했으면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을 겁니다. 아까운 분이에요.
-박정희 대통령은요?
◇그 사람은 수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죽인 사람입니다. 국민에게 고통을 준 사람입니다. 그걸 국민들이 몰라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잊어버리기를 잘해요.
-장점도 있지 않습니까.
◇장점은 무슨 장점. 공작정치의 귀재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언급조차 하기 싫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독재자죠. 거짓말쟁이고.
-김대중 대통령 소리만 나오면 가시에 돋친 말을 하시는데 평소에 무슨 유감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한 같은 것을 갖고 있으십니까. 도대체 두 분 사이가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웃으면서) 그런 건 아니고 좌우간 그 사람이 날 얼마나 속여 먹였는지 말도 못합니다. 이번엔 안 속겠다고 생각했는데도 지나고 보면 또 속았어요.
-예를 들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대통령에 출마 않는다고 해 놓고 출마하고. 야당 깨고 평민당 만들고. 노태우가 대통령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사람(DJ) 때문 아닙니까.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의 끈질김은 알아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았습니까.
◇이회창이 내 욕만 안 했으면 그 사람은 당선 됐을 리가 없어요. 이회창씨가 오판하는 바람에…
-현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씨의 말로가 불행해질 겁니다. 워낙 보복을 많이 했습니다. 원성이 너무 깊어요.
-김현철씨와 자주 이야기 나누십니까.
◇지금 미국 가 있어요.
-김현철씨가 구속되었을 때 당시 퍼스트 레이디이신 손명순 여사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매일 기도만 열심히 하고 있었죠. 내 눈치만 살피면서 현철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에게 직접 물어온 적이 없어요. 아버지인 내가 아들을 구속했으니 내 마음인들 오죽 했겠습니까. 현대사에서 없는 일이 없습니다. 마산에 계신 아버님께서 몇 마디 충고가 있었죠. 김대중씨도 아들 두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밖에서 뭐라고 그러는지 얘기 들어보세요. 대통령은 아들에게 무슨 직책을 맡기면 안됩니다. 밖에서 유혹이 워낙 심해요. 안 넘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앞으로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치가 전도되었어요. 적당히 거짓말해서 출세하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생각하는 풍토입니다.
-왜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는데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요.
◇우리 사회의 오랜 악습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을 나는 믿어왔는데 대통령을 해보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대통령 혼자 애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나중에 알았죠.
-요즘도 칼국수만 먹습니까.
◇(웃으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는 청와대의 겸손함을 시범 보이느라 그렇게 했죠. 지금은 집에서 가끔 해먹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기뻤던 시간은 언제였습니까.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청와대에 들어가기까지의 두 달간이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매일 구상했죠.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로는 고민도 많았고 격무에 시달렸고. 그래서 건강도 좀 해쳤죠.
-오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에 있는 동포들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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