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번 부시 행정부하에서는 클린턴 축출을 벼르고 별러온 공화당 보수파의 입김이 거셀 것으로 예상돼 대내외적으로 큰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 부시 취임에 얽힌 이야기와 향후 전망 등을 본보 논설·편집위원 좌담으로 엮어본다.
▲옥세철 논설위원-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두 주가 지났습니다. 37일을 끈 재개표 정국의 혼란 끝에 출범한 부시 행정부의 앞날에 대해서는 그동안 희망과 우려가 교차되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법원이 뽑은 대통령이다, 소수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다, 또 의회가 공화, 민주 양당으로 정확히 반분됐다 등등의 이유로 부시 행정부의 앞날에 대해서는 희망보다는 우려성의 전망이 더 컸던 게 사실입니다. 출범 2주밖에 안됐지만 반응이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취임 직후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화합을 내세운 취임연설은 정치 평론가들로부터 시의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링컨이나 케네디 연설 같은 명연설은 아니지만 상당히 수준급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조각 과정에서도 노동장관 지명 받은 린다 차베즈가 도중에 물러나고 법무장관 지명 받은 존 애시크로프트가 인준 얻는데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인선이었다는 평가입니다. 공화당측 여론조사로는 부시 지지율이 65%나 된다고 하니 괜찮은 출발이지요.
▲민경훈 편집위원- 히스패닉 보수파의 기수인 차베즈가 불법체류자를 한동안 집에 데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부시측이 조용히 물러나게 했다고 합니다. 부시팀은 이 사실이 공개된 후에도 대외적으로는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뒤로는 자진해 사퇴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뜩이나 민주당과 부딪힐 일이 많은데 그 정도 문제로 정치적 자본을 까먹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겠죠. 클린턴도 집권 초기 두 명이나 여성을 법무장관에 앉히려다 불법체류자 고용 문제로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상류층이 얼마나 불법체류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박덕만 편집위원- 각료들이 너무 우파 일색이라는 비난은 있습니다. 미네타 교통장관 외에는 진보적인 인물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애시크로프트의 경우 평소 소신까지 굽혀가며 전 동료였던 상원의원들에게 읍소한 덕분에 인준을 받기는 할 것 같지만 과연 그가 법무장관으로 취임하면 약속한대로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할지 아니면 약속을 뒤집고 평소 소신대로 극우방향으로 밀고 나갈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권- 애시크로프트뿐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전체 방향이 너무 보수로 치우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벌써부터 나왔습니다. 부시가 ‘화합’을 주제로 취임연설을 하자 공화당 일각에서는 ‘그게 아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이 어떤 곳이냐, 초당, 화해 내세우며 어물거리다가는 민주당에 끌려 다니기 십상이라는 것이지요. 부시도 우선 공화당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해외가족계획 단체들에 연방 지원금을 없애고 종교단체에 연방예산을 지원해서 자선사업을 돕겠다는 발표가 모두 보수 이념에 맞는 것들이지요.
▲박- 부시가 낙태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교회에 연방정부 지원을 해주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뜨거운 감자’를 집어들자 진보진영에서는 "그것 봐라. 그의 감춰졌던 참 모습이 드러나고 있지 않느냐"며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부시 입장에서는 자신을 지지해 준 보수진영에 대해 ‘뭔가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꺼낸 아이디어로 보입니다만 시기적으로 다소 성급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민-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종교단체에 연방정부 돈을 주겠다는 부시의 발표가 요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리버럴 그룹에서는 정경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부르짖고 있지요. 하지만 의외로 민주당 일각의 지지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를 상대로 재활 프로그램을 하는 기관중 교회등 종교단체 쪽이 훨씬 성공률이 높다는 게 입증된 데다 똑같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종교단체라고 돈을 주지 않는 것은 종교차별이란 부시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종교단체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돈을 교세 확장에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옥- 의회가 양분되고 소수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부시는 중도적이고 타협적인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이 전망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우선 법무장관 기용에서 공화당 내에서도 우파에 속하는 인물을 발탁한 점이 그렇습니다. 이번 낙태문제, 종교기관을 통한 사회 서비스제 지원등 일련의 조치는 공화당내 최대 계열인 보수우파를 의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 아버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얻은 교훈 같아요. 중도를 표방하다가 보수우파의 지지를 잃어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 재선서 실패한 데서 얻은 교훈 말입니다.
▲박- 아무튼 미국내 상위 2%의 부자들을 위해 엄청난 감세를 계획하고 있는 부시가 세계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원조를 늘려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가족계획을 지원하던 돈을 중단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해외 가족계획 단체들에 대한 원조중단은 수많은 여성들이 원하지 않던 임신을 해결하기 위해 무허가 시술을 받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내 가족계획단체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등이 애시크로프트의 법무장관 인준을 반대한데 대한 보복조치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 단체는 과거 할아버지 때부터 부시 가문과 인연이 있던 단체라고 합니다. 부시의 할아버지가 이 단체를 지원했고 아버지 부시도 하원의원 시절인 1970년 가족계획법을 기안해 통과시켰던 일이 있다고 합니다.
▲민- 개표 논란으로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그래도 이만하면 스타트가 순조로운 편이지요. 주 선거공약의 하나였던 감세안도 그린스펀 의장이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어떤 형태로든 통과가 확실시되고 민주당 지도부와의 관계도 그만하면 좋은 데다 인준을 놓고 민주당과 리버럴 그룹의 집중포화를 받던 애시크로프트 법무도 결국 장관 자리에 앉을 전망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순조로운 정권 승계는 측근 보좌관에 베테런이 많은데다 클린턴이 퇴임 마지막에 위증을 시인하고 도망자를 사면하는 등 스타일을 구기는 바람에 덕을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권- 부시가 주인이 되면서 가장 바뀐 건 백악관 분위기라고 하지요? 클린턴은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밤늦게까지 회의하고 밤참 먹고, 행사시간도 기분에 따라 늘리고 하며 늘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고 해요. 그런데 부시는 정반대여서 정확히 시간에 따라 행동하고 취침시간 10시를 어기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지난 8년 밤중까지 열려있던 백악관 주방문이 이제는 정시에 닫힌다고 합니다.
▲민- 각료들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클린턴 시절에는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면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이번 부시 행정부 각료들은 부시 본인을 빼고는 명문대 출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이도 클린턴 주변 인물들이 20대에서 30대로 새파란 젊은 세대가 많았다면 부시 측은 대부분 재력 있는 중장년층이고 클린턴 팀이 순발력 있게 그때그때 상황에 적응하는 재사 타입이라면 부시팀은 원칙대로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관료 스타일입니다. 따라서 평소에는 부시팀이 조직력 있게 일을 처리하겠지만 돌발사태가 터지면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옥- 조각을 통해 드러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선거 유세 때 부시에게 따라붙던 평가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정책에는 문외한이라는 게 부시에 대한 일반적 평이었는데 그의 조각을 보면 정반대로 해외정책에 강한 대통령이 될 것 같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에다가 콜린 파월 국무,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등 부시 행정부의 해외 및 안보정책의 톱 포스트에 기용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해외정책의 베테런들이어서 ‘최강의 최정예 군단’이란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는 부시 행정부는 국내정책보다 오히려 해외정책에서 더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민- 한인들로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큰 관심사이지요. 현재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얘기로는 부시 대외정책팀 강온파 간의 권력투쟁이 상당한 모양입니다. 강경파의 수장은 체니 부통령으로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한 온건파들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쪽입니다. 현재까지로는 체니 쪽이 우세한 것으로 돼 있어 북한에 대해서도 힘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박- 파월과 체니의 힘 겨루기는 뿌리가 깊지요. 과거 데저트 스톰작전 때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으로 마찰을 빚었는데 그것이 요즘 다시 재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부시가 외교문제는 골치도 아프고 잘 모른다며 체니에게 일임하는 바람에 파월이 허수아비 노릇을 하게 됐다는 것이지요. 럼스펠드등 체니 계열의 강경파들이 득세를 하고 있고 파월과 콘돌레자 라이스 안보보좌관등 신중론자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고 합니다.
▲권- 북한도 부시 행정부 분위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습니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남한 정부와의 사업에 시큰둥하던 북한이 올해 들어선 태도를 180도 바꾸었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보내는 개방 신호도 부시 행정부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대북 관계에서 부시 행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강경하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클린턴 행정부식 달래기 방침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옥-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한국 정부도 몹시 긴장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성사시킨 남북 정상회담, 또 뒤이은 대북 정책이 근간부터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불안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파월이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첫 공식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강성기조의 발언을 했고 이어 아미티지등 부시 해외정책팀의 주요 멤버들은 잇달아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비판성의 코멘트로 일관, 한국정부는 적지 아니 당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화당의 입장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한 정책의 결실인 제네바 협정도 미국이 질질 끌려 다니다 맺은 협정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니만큼 대북 정책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궤도수정이 불가피 하다고 보아야겠지요.
▲박- 전임자가 모처럼 달래서 협상테이블까지 끌어 앉혀 놓았던 것을 이제 와서 독재자 운운해 가며 뒤집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물론 대북한 자세에 신중을 기해서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생각까지는 좋습니다만 어렵사리 조성한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옥- 공화당 행정부는 원래 군수업계와 가까운 관계입니다. 미국의 안보도 안보지만, 이런 특수관계를 참작할 때 부시 행정부가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구축을 서둔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NMD 체제 구축에 최대 빌미를 제공해 준 게 북한의 미사일 개발입니다. 이런 북한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처럼 유화적 입장을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또 그동안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과의 동반관계를 강조하다 보니 일본에 대해 소홀했습니다. 부시 행정부 하에서 아시아 정책은 순위 조정을 겪게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단 일본등 전통적 우방의 지지를 끌어내 NMD 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게 초기의 수순이 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북한 문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오겠지요. 한국의 외교역량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박- 이 모든 것을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부시가 우유부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4년 뒤 미국호를 전혀 엉뚱한 곳에 끌어다 놓지나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인들 이야기도 좀 해봅시다. 그래도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 하에서는 고홍주, 정동수씨등 고위직에 오른 한인들이 있었습니다만 부시 정권에서는 큰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내 인맥이 약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인들도 목소리를 높여 제 밥그릇을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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