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전쟁 직후 목화밭 이민 후손들 아직도 명맥
미국내 아시안계 중 중국인들의 이민사는 타인종에 비해 단연 뿌리가 깊다.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맨해턴의 관광명소로 유명한 차이나타운의 존재가 이같은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미시시피주 클리블랜드의 미시시피강 하류 델타지역에 가면, ‘중국인 침례교회’라는 팻말이 붙은 2층짜리 교회당이 서있다.
느닷없이 이런 지역에 중국인 교회가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실이다. 상식적으로는 이런 곳에 중국인 커뮤니티가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의 집결지라고 짐작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다. 이곳의 중국인들은 일찍이 남북전쟁 직후, 남부의 목화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중국계 이민자들의 후손들이다.
아직도, 주일이 되면 10여명의 중국계 교인들이 영어-중국어 혼용 찬송가를 들고 이 교회를 찾는다. 이들의 존재는 한 세기를 족히 넘긴 초기 중국인 이민자들의 유산인 셈이다.
이들의 예배는 오후 나절에 열린다. 오후예배 역시도 과거 흑인고객들을 상대로 그로서리 마켓을 운영했던 중국인 이민자들의 삶의 잔영이다.
교회 곁에는 초창기 중국인 학생들이 공부했던 학교건물이 붙어 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인 아동들은 백인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수 없었다. 열등한 2등국민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백인남편과 함께 약국을 운영중인 51세의 패트리샤 울프도 그런 중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로서리를 운영했는데, 건물 앞부분은 가게로 사용했고 뒷부분은 살림집으로 개조해서 살았다. 울프도 초창기 대부분의 중국계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환경을 접하며 성장했다. 그녀의 집은 타운의 흑인밀집 지역에 있었지만, 공부는 타운 반대편에 있는 백인학교에서 했다.
울프는 주말마다 학교에서 열리는 댄스파티 대신, 4명의 형제들과 함께 중국인 파티에 참석했다.
"분명히 뭔가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울프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런데,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것만 같던 델타 중국인들의 삶이 최근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조만간 오픈될 그린빌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델타 스테이트 대학의 존 콴 교수가 델타 중국인들의 자료를 수집 중이기 때문이다.
이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가르치는 콴 교수는 그 자신 델타 중국인 2세다. 또, 같은 대학의 역사학자들은 대학내 고문서실 보관용으로, 델타 중국인들의 삶에 관한 구술역사를 녹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4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그로서리 마켓들이 산재해 있었다. 1960년대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12개 시골 카운티에 약 1,200여명의 중국계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중 일부의 중국인들은 쥐죽은듯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며 살았으나, 또 다른 중국인들은 주변의 백인 및 흑인사회에 동화되어갔다.
’미시시피 중국인: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라는 책의 저자 제임스 로웬은 델타 중국인들의 삶의 변천사를 이렇게 요약한다.
"미시시피의 중국인들은 두 인종을 위해 형성된 시스템 안에서 제 3의 인종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들 자신은 물론 사회시스템 자체도 델타 중국인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른채로 살았다"
그같은 상황에서, 델타 중국인들은 1924년 학교인종차별에 항거하는 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하게 된다.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로 널리 알려진 이 소송은 그후, 미국 전역에서 봇물처럼 터진 학교인종차별 소송의 선구자적 사건이 되었다.
당시, 중국인 그로서리 업주 공 럼은 딸의 백인학교 입학이 거부된 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며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대법원은 "백인 인종만을 위한 백인학교의 전통보존"이라는 미시시피주의 오랜 정책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일각에서 주류사회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 다른 한 부류의 중국계 이민자들은 급격히 주류사회로 동화되었다.
이런 흐름은 주로 미국에서 새로 가정을 꾸민 이민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시만 해도, 먼저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남자가 본국에 있는 아내를 초청하기가 극히 힘들었다. 그 결과, 중국계 남자들이 흑인 또는 백인 여성들과 재혼하는 사례가 늘게 되었다.
울프 여사는 중국인 교회에 나가며 피아노를 반주한다. 그녀 자신은 백인사회에 동화되어 살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을 보면 일종의 연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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