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데니로(58) 와 멜 깁슨(45). 액션과 카리스마의 두 배우가 코미디를 했다. "어색하겠다" 보다는 "재미있겠다" 는 생각이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배우 모두 여러 작품에서 능청스런 맛을 살짝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나을까. 인기나 나이로 보면 황혼기를 접어든 데니로 보다는 아직도 남성미와 정열을 자랑하며 미국의 정의에 선봉에 서곤 하는 호주 출신 멜 깁슨이다.
그러나 연기에 관한 한 데니로를 앞지를 배우가 많지 않다. 멜 깁슨이 다양한 표정과 반응으로 즐거움을 준다면, 데니로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노련함으로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관객들을 웃긴다.
<미트 페어런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려면 그녀의 부모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 잭(로버트 데니로)이 문제다.
딸 둔 아버지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질투심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의 트집잡기와 빈정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랴. 사랑하는 여인 팸(테리 폴로)과 결혼하는데 이 정도 어려움 정도야. 사흘만 참자.’ 남자 간호사 그렉(벤 스틸러)은 이렇게 다짐한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자의 부모 집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가방을 잃어버려 처음부터 조심성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힌 그는 잭의 끝없는 흠집잡기에 횡설수설, 갈팡질팡, 거짓말을 반복하며 낭패만 당한다. 그렉이 신주처럼 모시는 할머니 유골단지를 깨뜨리고, 팸의 여동생 결혼식 예행연습을 엉망으로 만든다.
변태취급을 받기도 한다.
’오스틴 파워’ 에서 화장실 낙서 같은 노골적 성 농담을 했던 제이 로치 감독은 ‘미트 페어런츠(Meet The Parents)’ 에서는 아버지란 존재를 집어넣은 가벼운 삼각관계의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가족공동체란 가치에 시선을 두고있고, 그것을 깨는 것은 가족이 될 타인에 대한 배타성과 불신, 서로에 대한 솔직한 자세에 있다고 말한다.
잭이 34년 동안 비밀리에 활동한 CIA요원으로 이중간첩을 잡아내는 심리분석가란 설정, 그렉을 의심해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는 잭이나, 솔직함보다는 어떻게든 거짓말을 하더라도 잘 보여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자는 그렉의 충돌에는 그런 의도가 숨어 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는 무수한 증거나 자료가 아니라, 믿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이다. 그것을 이 영화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는 식의 능청으로 넘어간다.
미국에서 지난해 10월 개봉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가장 큰 이유는 로버트 데니로의 연기 덕분일 것이다
얄미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유머 넘치는 그의 능청스런 표정속에는 가족조차 믿음을 잃어가는 미국인들의 자화상이 숨어 있다. 데니로의 공격에 마치 신병처럼 반응하는 벤 스틸러의 재주도 보통은 아니다.
<왓 위민 원트>
스타킹을 신고, 마스카라를 하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멜 깁슨의 모습이 느끼하다.
옷걸이를 마이크 삼아 거실에서 혼자 노래와 춤을 출 때 그의 모습은 분명 피에로 로빈 윌리엄스나 더스틴 호프먼 보다 어색하다. 그러나 역시 그는 노련한 배우다.
무겁고 강해야 할 때와 가볍고 섬세해야 할 때를 안다.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는 가볍지만 감정 표현이고 풍부하고 지루하지 않으며, 마지막 느낌이 따뜻하고 감미롭게 다가오는 그런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아이 러브 트러블’ 처럼 경쟁자로 만나 오직 상대를 쓰러뜨리기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싹 튼 사랑. 광고 기획자 닉(멜 깁슨)도 그랬다.
그는 이혼한 바람둥이며, 남성우월주의자이다. 아침마다 들르는 커피숍의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들에게는 매력적이지만 독선적인 인간으로 낙인 찍혔다. 물론 능력도 뛰어나다.
그에게 라이벌이 나타났다. 바로 경쟁사를 그만둔 여성광고 기획자 달시(헬렌 헌트)가 자신의 상사가 된 것이다. 그에게 자신의 승진 기회를 뺏은 달시는 마녀이다.
그 마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그는 여성 상품 광고 기획안을 멋지게 내놔야 하고, 그러자면 여성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그는 여자와 즐길 줄만 알았지 참다운 인간관계가 없었기에 열 다섯살 난 딸의 행동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여성감독 낸시 마이어스는 기발한 꾀를 생각해 냈다. ‘만약 그가 갑자기 여자들의 속마음을 모두 듣는 초능력을 가진다면?’ 말도 안되지만 어느날 그는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손질하다 욕조에 넘어져 감전이 되고 난 뒤 그런 능력을 갖게 된다.
주위 여자들의 마음이 다 들린다. 그런 그에게 의사는 외친다. "당신은 행운아입니다. 여자가 원하는 것(마음)을 알면 세상은 당신 것입니다."
아파트 여성경비원에서 회사 동료, 달시의 속마음까지 닉을 통해 듣는 재미가 만만찮다. 닉은 달시의 아이디어를 훔쳐 멋지게 성공한다. 그것이 영화가 말하는 ‘세상’ 은 아니다.
그러면서 알아버린 달시의 외롭고 아름다운 마음,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세상’이었다. 뻔한 결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바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아이 러브 트러블’ 의 작가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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