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력 충당을 위해 시작됐던 한국인의 미주 이민이 오는 2003년으로 100주년을 맞는다. 미주내 각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일찌감치 기념사업회가 구성돼 다양한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LA에서도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LA’ 발족됐고 서동성 변호사가 실행위원장을 맡았다. 독립신문 발행인 서재필의 종증손으로 평소 이민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서변호사는 외신기자의 꿈을 안고 연세대 정외과 1학년 재학중 유학 길에 오른 올드타이머다. 오리건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한 뒤 LA 이그재미너지 기자로 활약하다가 LACC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던 그는 아직도 변호사보다는 전직 언론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생업인 변호사 활동은 제쳐놓고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에 분주한 서변호사를 만나봤다.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LA’는 어떤 계기로 발족됐는가. 하와이나 타지역 기념사업회와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
▲2003년이면 이민 100주년이다. 몇몇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우리도 무언가 준비를 해야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해 6월부터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번 모이다가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벌써 지난해 초부터 활동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늦은 감이 있다. 하와이에서는 75주년, 90주년, 95주년 행사도 성대하게 치렀고 95주년에는 화보집까지 발간했다. 본토에서는 LA 외에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사업회가 발족됐다. 각 지역 사업회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까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오는 2월말 하와이에서 대표자 회의를 갖기로 했다.
-13개에 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그 내용을 좀 소개해달라.
▲우선 3월 중순에 사진전 ‘사진으로 본 이민 100년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가 수집한 사진 중에는 이민 시작 당시 한국의 풍물과 인물 등 진귀한 것이 많다. 한인이민이 시작된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00장정도 수집이 됐는데 전시회에서는 장소 관계로 다 보여줄 수가 없고 150장 정도가 고작일 것 같다. 그래서 수집 사진중 400장 정도를 가지고 화보-요즘은 도록이라고 한다-를 발간할 계획이다. 1만부 정도 찍어 5000부 정도는 한국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사진을 모으는 과정에서 당시의 여권인 집조등 유물들도 상당히 수집됐다. 이를 모아 전시할 역사전시관을 건립하고 제퍼슨에 있는 국민회관 보존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그밖에 학술대회, 음악회, 연극공연, 한인 미국이민의 날 선포 등의 사업이 준비중에 있다. 해외동포 족보 시스템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족보는 우리 대에서 끝나 있다. 누가 2세, 3세의 이름을 족보에 올릴 것인가. 이제 여기서 새로운 족보를 시작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족보를 만드는데 한국 족보와는 달리 모계 혈통도 기록한다. 미주 한인들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500만 한민족은 누구나 올릴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라도 꼭 이뤄놓고 싶은 사업이다.
또 하나 이민소설집 발간사업이 있다. 1차로 한국작가 10명, 재미작가 5명등 15명의 이민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모아 소설집을 발간하는데 오는 3월중 출간될 예정이다. 다음으로 덴버 프로젝트가 있다. 하와이, 멕시코 이민은 알려져 있지만 덴버 이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07~1910년 700여명이 덴버에 광부로 왔다. 젊은 망명 학생층이 주류를 이뤘는데 여기서 독립운동을 크게 했다. 한국인 촌까지 형성됐었고 자체 경찰까지 두었을 정도다. 1908년 그레이스 처치에서 열린 애국동지 대표자 회의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참석했다. 여기서 헌법이 만들어졌는데 상해 임시정부 헌법의 기초가 됐다. 이준 열사와 함께 헤이그에 파견됐던 이상설씨, 이승만, 박용만, 윤기병(하와이 신민회 회장), 유일한(유한양행 창설자)씨 등이 덴버에 모였다. 그러다 1910년 1월30일 탄광에서 큰 사고가 발생해 76명이 죽었는데 한국사람도 많았다. 일본 영사관이나 탄광측이 쉬쉬하는 바람에 연고자가 없던 한국인 사망자들은 묘비도 없이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36세의 나이에 암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립운동가 박희병 선생도 이 곳에 묻혀 있다. 묻혀 있는 곳이 대충 어디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묘비가 없어 확실하지는 않다. 이번 기회에 재조명해 묘비라도 세울 계획이다. 이 일에 앞장서 왔던 모연호씨와 함께 다음 주말 덴버에 갈 예정이다.
-우리 이민 원년은 언제인가.
▲1902년 12월22일 미국 상선 SS 게일릭호를 타고 122명의 한국인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제물포 항구를 떠났다. 민영환씨가 배웅을 나왔었다. 20일만에 호놀룰루에 닿은 것이 1903년 1월13일이었다. 고베와 호놀룰루에서 일부가 신체검사에 불합격해 되돌아갔고 102명이 내렸는데 이들이 한국인 첫 이민자들이다. 그 때부터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05년까지 7,000명이 왔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은 고되고 오락은 없었다. 그래서 자연 술을 마시고 도박에 손을 댔다. 토착민들과는 결혼을 못하고… 그래서 사진결혼이 생겼다. 약 1,000명 정도의 꽃다운 처녀들이 사진 한 장만을 달랑 들고 이민 길에 오른 것이다. 그 때부터 생활이 안정되고 2세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육열만은 뜨거웠다. 덕분에 오늘날 주대법원장까지 나왔지 않은가.
-이 사업이 미주 한인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본다. 이민은 나무를 새로운 토양에 옮겨 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뿌리를 내리는 것인데 우리 한국의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볼 때 해외로 뻗어나가야만 한다. 땅덩이가 좁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좋다. 지금도 남한 인구의 10분의1 이상이 외국에 나와 살고 있지 않은가. 나와서 잘 살려면 뿌리가 잘 자라야 하며 자기네 뿌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내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 2세, 3세들에게 우리가 살아온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주자는 뜻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업을 추진하려면 자금이 많이 들텐데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
▲지금까지는 15명 실행위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앞으로 100인 위원을 선정해 회비 200달러씩을 염출해 종자돈으로 삼을 계획이다. 또 도록을 발간하면서 재단이나 큰 기업을 100여개 선정해 광고비 협찬을 받아 경비를 조달할 것이다.
-한국 정부로부터의 지원은 없나.
▲한국 정부에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고 알려 준 정도다. 기댈 생각은 없지만 정식으로 사업이 시작되면 보훈처 등에서 정식으로 지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민문제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초창기 유학 와서 고학 안해 본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영어를 좀 하는 편이었기에 번역을 많이 했다. 제일 먼저 번역을 맡았던 것이 ‘재미한인 50년사’였다. 김원용씨라는 분이 쓴 것이었는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조선사람은 우매하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 하에 있어야 한다"는 망언을 했던 고종의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 장인환 의사의 재판에서 영어 잘 한다는 이승만을 통역으로 데려왔는데 "테러한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없다"며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대학 다니면서도 도서관에서 한국 학생들에 관한 당시 잡지를 많이 찾아 읽었고 이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은 어떤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여기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야 한다. 중국 사람들은 한번 떠나오면 잊고 사는데 우리 한인들은 언젠가는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미국은 주인이 따로 없는 이민자의 나라다. 우리가 여기에 뿌리를 내리면 우리가 주인이다.
-일본계는 미네타 장관이 있고 중국계도 장관 지명자가 나왔는데 거기 비해 우리의 정치력은 약한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력은 돈과 표다. 시민권은 가족초청 목적으로 따고 투표는 안 하니 힘이 없다. 표는 권리고 권력이다. 그것을 포기하니 그만큼 정치력이 약한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돈은 잘 주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봉으로만 취급당할 뿐 하나도 반대급부를 못 받는다. 한인들은 머리는 좋아 대학교수 진출은 많이 하는데 정치무대 진출은 저조하다. 언젠가는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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