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전기통제기관인 ‘ISO’(Independent System Operator)가 11일부터 지역별 강제 절전에 돌입할 예정인 등 캘리포니아의 전력난이 실생활에 직접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경제가 이미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 가운데 고육지책으로 나오는 이번 절전 조치는 캘리포니아가 맞고 있는 전력난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조치다. 원인·영향·대책을 중심으로 전력난을 점검한다.
<현황> 캘리포니아주민 75%에 대한 전력 공급을 관리하는 비영리기관인 ISO는 9-10일 전력비상 1단계와 2단계를 왔다갔다하다가 11일부터는 급기야 지역별 강제절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강제절전은 북가주를 중심으로 시행돼 LA나 오렌지카운티 일원은 제외되지만 근본적으로 주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것으로 캘리포니아주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ISO는 지난 12월 7일에도 가주 사상 처음으로 전력비상 최고단계인 3단계(전력예비율 1.5%이하)를 발동했으며 당시에는 지역별 단전조치 직전까지 갔었다. 전력비상 1단계는 전력예비율이 7%이하인 경우에 발동돼 주민들에게 절전을 권고하며, 2단계는 전력예비율 5%이하인 경우에 발동돼 전기료 할인을 조건으로 공장·건물·학교 등에 대해 일정시간 절전하며, 전력비상 3단계는 전력예비율이 1.5%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에 발동되며 강제 절전이 시행된다.
이번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전력시장의 수요공급, 제도적 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로 앞으로 당분간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처럼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되자 실리콘 밸리의 첨단업체들은 단전 조치에 대비해 자가발전기를 구입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으며 칩 메이커인 ‘인텔’사는 전력사정이 개선될 때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자사 제품의 생산을 확대하지 않기로 9일 결정했다.
LA·샌디에고·새크라멘토 주민을 제외한 캘리포니아 주민 2,400만명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태평양개스전기사(PG&E)와 남가주에디슨전기회사(SEC)는 지난 98년 전기시장 자율화법 시행이후 도매가가 900%이상 뛰었으나 오는 2002년까지 가격을 올릴 수 없어 현재 90억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PG&E는 포천지 선정 미 500대 기업중 73위, SEC는 178위인 대기업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J.P. 모건 체이스 은행은 두 회사의 부도방지를 위해 5억달러를 신용대부해준 것으로 전해졌으며 은행 투자자들은 이들 두 은행의 잠재적 동반 파산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원인> 이번 전력난의 원인은 ▲전기료 자율화조치 실패 ▲전기수요 급증 ▲천연개스가 급등 등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96년 타주에 비해 높은 전기료의 인하를 유도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계법을 개정하고 전기료 자율화조치를 시행했다. 이 조치의 취지는 자유경쟁을 촉진함으로써 보다 싼값과 서비스로 주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주정부는 전기업계의 가격자율화 요구를 수용하되 소비자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전기료를 10%까지 인하하고 인하된 전기료는 1998-2002년 동안 동결케 하면서도 경쟁촉진을 위해 다른 지역의 전기회사들에 발전소를 매각토록 했다. 캘리포니아주 안에 있는 발전소를 타주의 전기회사들에 매각하면 그들간의 경쟁력이 높아져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상했던 것인데 남가주 에디슨 전기회사(SEC)가 공급 전기량의 불과 30%만을 자체생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정부는 전기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부과하는 소매가는 kw당 5.4센트로 묶고 전기회사들이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사들이면서 지급하는 도매가는 자유화했으나 전기회사들은 대폭 인상된 도매가를 가격인상 동결조치로 소매가에 반영하지 못해 부도에 직면해 있다. ‘PC&E’의 경우를 보면 도매가는 지난해 8월 kw당 19센트였다가 12월에는 40센트로 폭등했다. 전기회사들이 어째서 현상태라면 당장 파산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같은 도매가 폭등의 배경에는 지난해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고 천연가스와 유가가 폭등했다는 점도 얽혀 있으나 어쨌든 작년 하반기중 수십차례에 걸쳐 전력비상조치가 발동됐고 가격통제를 받지 않는 샌디에고 등 몇몇 도시의 전기료는 두배이상 치솟았다.
전력난의 또 다른 이유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10년간 전기수요가 30%이상 늘었으나 공급은 6% 증가에 불과하며 발전소는 하나도 증설되지 않았다.
반면 전기료 자율화를 구상하던 1990년대 전반에는 알지 못했으나 캘리포니아주도 경제활성화의 혜택을 입으면서 전력수요가 급증했으나 이같은 전력수요는 시애틀, 포틀랜드, 라스베가스 등에서도 함께 증가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가 부딪힌 전력공급의 한계는 여전히 극복이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영향>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과 전기공급회사들의 파산 위기는 이미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경기후퇴 조짐에 가세함으로써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USA투데이지는 10일 보도했다.
LA타임스도 최근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 전기회사들이 파산할 경우 대출은행들이 타격을 입고 이는 기업과 소비자에 대한 자금지원을 교란, 결국 총체적 경제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며 이런 이유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방정부 관리들은 캘리포니아를 하나만 떼 놓고 볼 때 국내총생산(G에)로 본 캘리포니아 주경제는 미국 등 5개국을 제외한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전력난이 미국 전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침체국면에 있을 때 캘리포니아 전력난과 같은 예상치 않은 충격은 미국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전기료가 올라간다. 이미 캘리포니아 공공요금위원회(CPUC)는 지난 3일 전기회사들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향후 90일간 가정용 전기료는 7%씩, 영업용 전기료는 15%씩 각각 인상키로 결정함에 따라 가정은 월 5달러, 업체는 최고 수천달러까지 더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전기회사들은 이 정도 인상으로는 부도를 막을 수 없다며 30%이상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 차기 민주당 대권주자 후보로 내년 재선거를 앞두고 있는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8일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전기료 안정 및 발전소 증설을 위해 10억달러의 기금을 설치하고 주검찰에 대해 전기회사들의 가격조작여부를 조사토록 지시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클린턴 대통령도 임기가 불과 10일밖에 남지 않았으나 "캘리포니아의 전력난 해결을 위해 부시 당선자가 취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연방정부 차원의 대책도 동원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스펄링 백악관 수석경제조정관도 "캘리포니아와 같은 주의 전력 위기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주정부, 전기회사들은 연일 대책회의를 열어 전기수급 및 가격안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가격인상 상한선을 설정한 뒤 캘리포니아와 전기회사들이 장기계약을 맺도록 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 있는 해결책으로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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