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체한 것도 아닌데, 임신도 멀미도 아닌데 토한다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젊고 멀쩡한 여자들이 남모르게 토하고 있다면 상상이 되겠는가. 하지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화장실에 숨어서 맛있게 먹은 음식을 토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다.
한국에서 벌써 20년 전부터 은밀하게 토하는 방법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음식 절제의 한계에 이르면 우선 밥을 실컷 먹고는 입에 손가락을 넣고 억지로 다시 토해내는 것이다. 먹는 포만감도 느끼고 살도 빼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도 못한다.
어느날 마른 편의 미혼의 여자가 도움을 청해 왔다. 일주일에 몇 차례씩 토하던 경력(?) 10년이 넘으니 이제는 자신이 토하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토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음식 먹기가 두렵고, 결국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 상태로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원해서 토했던 것이 음식만 들어가면 몸이 자동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본인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상으로 돌이키려고 몇년째 무진 애를 썼다. 지난 반년간은 모진 마음을 먹고 종교의 힘으로 고침받기 위해서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고백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신앙의 힘으로 치료될 수 없음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란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 생각과 느낌이 어우러진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것들을 분리해 놓고 각각의 역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사고의 틀은 서구식 교육에 근거한 것이며, 서양문화는 기독교 사상이 뿌리를 내린 헬라(그리이스) 문화와 철학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육체보다는 정신적 차원을 우월한 것으로 여겼으며, 느낌 보다는 생각, 마음보다는 영혼의 차원을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되었다. 이같은 균형과 조화를 잃은 일방적인 사고는 여러가지 형태의 문제로 나타난다.
나름대로 영적인 성숙을 이뤘다고 자족해 하지만 마음은 메말라지고 몸은 피곤해진다. 마음은 평안하다고 자위하지만 피부는 혈색을 잃고 얼굴은 어둡다. 생각은 올바르다고 하지만 몸은 바른 자세를 잡지 못한다. 이런 예를 들어도 스스로 문제로 여기지도 않으면 절대로 정신건강을 위해서 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풀릴 것이라는 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종교인들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많으며 자신들도 모르지만 어느새 이중적인 인격과 언행으로 나타난다.
인간 존재의 이해를 위해서는 영(sprit), 혼(soul), 육체(body)로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모여서 사람됨, 인격으로 표현된다. 몸의 상태는 곧 영혼의 표현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생명의 세계는 신비롭다. 자신의 알량한 편견으로 창조의 섭리를 막아서도 안되며 왜곡해서도 안된다. 자연과 인간, 종교와 사회,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면 삶은 아름다운 것이며 가치있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 종교가 정신건강에 방해가 되어서도 안되며 교회가 지역사회 발전과 봉사, 단합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 하는 진실하고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이 계절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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