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주요 경제각료 인선을 단행하면서 ‘부시 경제팀’의 색깔이 드러나고 있다. 의회 인준을 남겨놓고 있기는 하지만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지명한 주요 경제 각료의 면면을 보면 클린턴 행정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친기업주의’를 대전제로 강한 달러를 포기하면서 수출을 증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대외통상압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연방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팀 트로이카는 재무장관·상무장관·백악관 경제보좌관이다.
부시 당선자는 당초 월가 출신을 기용할 것으로 여겨졌던 재무장관으로 세계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 알루미늄’의 폴 오닐 회장을 ‘깜짝 기용’했고 상무장관에는 예상대로 그의 오랜 친구로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석유가스 회사 ‘톰 브라운사’의 돈 에반스 회장을 임명했다. 둘 다 기업인이다. 여기에 백악관 경제보좌관 기용이 확실시 되는 로렌스 린지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위원을 지낸 금융인이긴 하나 현직은 기업경제연구소에 연구위원이다. 기업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연방 재무·상무 장관과 한국으로 말하자면 청와대 경제수석보좌관에 해당되는 백악관 경제보좌관이 모두 기업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경제각료는 아니나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앤드루 카드도 GM부사장 및 전미자동차제조업체 연합회장을 역임해 기업통이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이처럼 실물경제에 밝은 기업인 출신의 실물경제통들로 새 행정부의 경제팀을 구성했다는 것은 앞으로 부시 행정부의 경제운용 및 대외경제 정책이 클린턴 행정부와는 다른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이같은 인선에 입각,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대외 통상압력 강화 ▲강한 달러 포기 ▲’친기업주의’를 중심으로 짜여질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는 벤처와 정보통신 등 정보산업 중심의 이른바 신경제에서 전통적인 굴뚝산업도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제운용 스타일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무장관은 기업인을 임명했다 해도 세계 금융의 흐름을 꿰뚫고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을 밀고갈 재무장관에 기업인을 앉힌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은 최근 경제각료 8명 가운데 5명이 월가 출신이었을 정도로 금융을 우선시, 각국으로부터 제조업에서 추격위협을 받아도 금융을 장악해 여전히 경제강국의 면모를 지켜왔고 이번 인선에서도 금융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당연히 월가 출신이 재무장관으로 기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전망을 뒤엎고 재무장관에 막상 오닐이 내정되자 월가는 즉시 ‘실망’으로 대답했다. 오닐이 백악관 예산실 차장을 지냈고 미국 최고의 공공정책 연구소인 ‘랜드 코퍼레이션’ 소장을 역임했으며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도 막역해 감세 정책 추진에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금융과 돈의 흐름을 모르는 장관이 앞으로 월가를 어떻게 리드해 나갈지 회의적 반응을 보이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최근 나스닥의 나스닥의 추락도 같은 맥락이다.
오닐 장관 내정자는 비록 월가 출신은 아니지만 폭넓은 공직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론가라기 보다는 실용주의자로 평가되는데 월가의 실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시 당선자는 그를 적임자라고 소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같은 부시 당선자의 인선은 우선 그 동안의 금융중시 정책에서 실물위주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강력히 예고하는 것으로 이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정책기조인 공급위주 경제정책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새 경제팀은 무엇보다 기업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 주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 신경제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던 굴뚝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관심를 끄는 것은 ‘감세 정책’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정권은 ‘작은 정부’와 ‘저세율’을 통한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기업환경이 더 개선되고 효율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성향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경제팀으로 발탁된 재무와 상무장관 모두 강력한 감세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기업과 민간부문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대안으로 재계와 언론계에서 적지 않은 힘을 얻고 있다.
오닐이 중도적 인물이라는 평가도 공화당 일각에서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는 오닐이 감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비판이다. 그가 지난 92년 클린턴 대통령이 주장한 휘발유세 도입을 지지했고 감세 보다 부채 감축을 중시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당시 그의 전력이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지론인 감세정책를 밀어붙이는 데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새 경제팀은 달러나 무역정책에 있어서도 기존 정책과 궤를 달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미국은 그 동안 강한 달러를 통해 세계자본을 월가로 끌어 모았으나 새 경제팀은 기업경쟁력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강한 달러 보다 약한 달러를 선호할 수 있도 있다. 미국은 연간 4,00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데 달러 강세는 이같은 무역적자를 확대시킬 뿐이다.
그러나 부시경제팀이 그동안 강한 달러를 통해 물가안정, 금융강국, 신경제를 이룩한 클린턴 정부의 정책기조를 전면 수정하기는 힘들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막대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수출을 중시할 공산이 크고 이 과정에서 공정무역을 앞세운 시장개방 압력을 대폭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의 경우 과거에 한국 자동차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해 상당한 압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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