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 살의 저 여배우 노는 모습 좀 보소. 먼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기가 그렇게 즐거울까. 아무리 감독이 ‘팅(정지, NG)’ 을 외쳐도 싫은 표정이 없네. 중국 싱청(興城) 바닷가 겨울 바람에 볼과 귀가 얼얼한데, 오히려 얼굴은 상기된 열로 발갛게 피어 올랐네.
말 위에 앉아서 "누가 감히 명나라 공주를 가로 막느냐. 아무도 나를 저지하지 말라"며 성문을 열고 떠나는 장면찍기를 무려 일곱번. 그래도 감독(김성수)의 ‘OK’는 떨어질 줄 모르네. 그 순하고 잘 길들어진 말조차 힘들어 다리를 꼬는데, 그녀는 두시간이나 말 위에 꼼짝도 않고 대사를 중얼거리고 분장을 고치며 앉아 있네. 말이 몸을 뒤채자 목덜미를 쓸어주면서 달래네.
문제는 감정표현의 정도였네. 그녀가 분에 못이긴 듯 감정이 복받치자 감독은 "너무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지 말라. 여기서는 공주로서 억제와 냉정을 보이고 성문을 나서서 그 감정을 폭발하라"고 했네. 그녀로서는 쉽지 않은 모양인지 자꾸만 목소리가 커졌네.
말에서 내려 모니터를 보고는 부끄러운듯 웃었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촬영을 했네.
마침내 감독이 ‘OK’사인이 났네.
그녀의 거동 보소. 아쉬운듯 감독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을 자청했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대사중 ‘아무도’가 가장 중요하니까, 그 부분을 강조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는 감독 앞에서 직접 대사를 해보네. 듣고 보니 그게 좋은지 감독도 ‘하오(好)’라고 말했고, 그래서 흩어지는 스태프를 다시 불러 한번 더 찍었네.
촬영이 없는 시간에 그녀는 그저 평범하고 귀여운 소녀였네. 화톳불을 쬐며 아역들과 얘기를 나누고, 누가 말을 걸어도 웃으며 대답하고, 스타이면서도 조금도 티를 내지 않네. 한국 배우들과 함께 한 인터뷰 시간에 낡고 지저분한 의상을 벗어버린 그녀는 밝고 발랄했네.
벌써 넉달째 촬영 강행군을 했기에 지쳐 저녁시간까지 뺏는 이런 일이 짜증나고 귀찮기도 할 법한데 얼굴에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었네. 그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에서도 금방 나타났네. 짧은 질문에 긴 대답.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목소리를 높였네.
"왜 한국영화인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 출연했나" "한국배우와 일해보니 어떠냐"는 자칫 "좋아요"라는 성의없는 대답이 나오기 십상인 질문들.
그러나 그는 달랐네. "글이 그 사람을 말해주듯, 영화가 감독을 말해준다. ‘태양은 없다’를 보니 사람들이 폭발력과 힘이 있다. 배우는 좋은 시나리오도 중요하지만 좋은 감독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감독이 안성기씨를 ‘한국영화의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라는 호칭에 놀랐다.
그러나 촬영을 하면서, 촬영이 없어도 현장에 남아 후배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것을 보고 그 의미를 알았다"라고 말했네.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 리안의 ‘와호장룡’에 서극의 ‘촉산정전’까지. 비록 세편이지만 내로라는 스타들과 작업했으니 어깨를 세울 만도 한데 그녀는 이제 겨우 세편을 찍은 신인임을 강조했네. ‘햇병아리’라며 ‘감히’그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을 삼가했네.
그러면서도 중국영화에 새로운 생각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검열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6세대 감독’과의 작업도 기꺼이 하겠다는 도전정신도 보였네.
’무사’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12월 중국 싱청에서 만난 배우 장즈이(章子怡)는 때로는 ‘집으로 가는 길’ 의 수줍은 시골처녀 같았고, 때론 ‘와호장룡’의 야무진 여검객으로 처음 도전하는 외국영화를 정성과 즐거움으로 대했다.
인터뷰 도중 다른 배우들의 대답을 통역으로 일일이 듣고 싶어했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젖히면서 밝게 웃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영화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배우 같았다.
그래서 정우성도 "그 나이에 이런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를 하는 여배우가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는 말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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