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학술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소수계들은 주류언어는 빨리 습득하나 모국어는 빨리 잃어버리는 경향이다"고 말하고 있다. 재미 한인들을 보아도 어려서 이민 와서 자란 자녀들은 주류언어를 배우는 건 시간문제이지만, 모국어는 생각보다 빨리 잃어버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기에 앞으로도 혈연을 찾아 계속될 이민을 생각한다면 꽤 많은 세월이 흘러간 후에도 여전히 이민 와서 정착하는 1세대와 2세대의 과도기 현상은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 확실하다. 현재도 한인들 중에는 이미 동화되어 주류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계층이 있고 새로 이민 와서 정착하느라 애쓰는 이민 초년생들이 섞여 있다. 따라서 모국어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이민사회에 숙제로 남겨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국어에 대한 한인 2세들의 입장을 살피기 위해 미국 태생의 한인 2세와, 4세 이하에 이민 온 성인들 1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97%는 거의 영어만 사용하고, 3%만이 이중언어를 하는 입장이다.
조사대상이 된 캐롤라인의 경우는 늘 자신이 ‘떳떳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에 의해 자기가 순수한 미국사람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제야 한국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여 한국어 클래스를 택해 보았지만 너무 수준이 낮기도 하고 내용이 엉뚱해서 흥미를 못 가졌다. 결국은 지금까지도 모국어를 못하는 축에 들고 있다. 전화가 와서 "엄마 어디 가셨냐?"고 물어오면 덮어놓고 “마켓!"하고 끊어버리곤 했다. 대개 엄마의 친구들 전화를 받게 되는데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오랫동안 죄송스런 생각이다. 가끔 어른들이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쟤는 큰애가 그 정도 말도 못 알아들어?"하며 흉볼 때가 있다. 그래서 점점 한국 어른들과 담을 쌓고 지내게 되었다.
미국 태생의 캐시는 첫 미국직장에서 직장의 상사가 회사 안의 한인들과 함께 그룹으로 묶어 놓았다. 자기는 한국말을 못하고 한인 동료들은 영어가 서툴러서 너무도 분위기가 어색하고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자기가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혹 미국 사람들이 보면 대인관계가 나빠서 어울리지 못한다고 오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사람이 싫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언어 소통의 문제로 그들이 미국 사람보다 훨씬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얼굴은 비슷한데도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다.
반면 영어와 모국어가 익숙한 2세의 경우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는 사회에서 통역하는 일을 맡아 봉사할 일이 자주 생길 때마다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이중 언어를 못하는 친구나 동생들, 또는 영어를 못하고 미국 문화에 합류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볼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민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여러 나라 말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유익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모국어를 안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다문화로 구성된 미국에서 굳이 단일문화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모순될 수도 있다. 아시안인 우리들은 아무리 여러 세대를 거쳐서 주류사회에 동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비주류로 분류된다. 다문화의 모습 그대로 건전하게 조화를 이루며 뿌리를 내리게 한다면 훨씬 안전하고 견고한 사회구조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암시적인 징조가 보이고,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디게 되면 확실하게 구분되는 이질감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이때 정체성이 개발된 사람은 자신 있게 적응하겠지만, 막연히 자기는 "완벽한 미국인이다!"라고 자만하는 2세들은 당면한 현실을 극복하기가 너무도 힘들다.
모국어 교육은 어린 자녀들에게 자유선택으로 일임해 둘 수 없는 부모들의 당면과제이며, 자녀를 향한 사랑과 정성이 담긴 귀한 유산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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