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는 독실한 크리스찬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다녔다. 앨 고어도 뒤질새라 ‘본-어게인’경험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력했다. 조셉 리버맨도 끼어들어 탈무드의 가치관을 설교하고 다녔다. ‘하나님은 보수의 편인가, 진보의 편인가’ 대선 캠페인이 마치 신앙논쟁같은 양상을 보이자 나온 지적이었다. 하나님은 아주 공평한 판정을 내렸다. 감리교도인 부시, 침례교도인 고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무승부 판정을 내린 것이다.
무승부 판정과 함께 미국이 혼돈속에 빠져들고 있다. 파당적 분열이 심화되면서 개표 두주째인 현재에도 누가 차기 대통령인지조차 모르는 안개정국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우려의 소리가 여러 갈래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 위기론이다. 일부에서는 헌정위기론도 나오고 있다. 또 이런 질문도 제기된다. 양극화 상황을 몰고온 2000년 대선결과는 우연의 소산인가, 아니면 필연 일 수 밖에 없었는가.
상황은 몹씨 혼란스럽다. 그러나 몇가지 키워드들은 혼돈 가운데에서도 미국이 맞은 사태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베이비 붐 세대’ ‘클린턴 변수’ ‘소송만능주의’ 등의 단어다.
조지 W 부시와 딕 체니, 앨 고어와 조셉 리버맨.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는 베이비 붐 세대라는 것이다. 미국사회가 분열의 거대한 회오리에 싸여 월남전 찬반에서 민권투쟁 심지어 낙태문제 찬반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대립구도에 갇혀있을 때 성년을 맞은 게 베이비 붐세대다. 이 세대가 정치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지난 60년대의 대립구도가 재연되고 대선결과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45세에서 59세 연령그룹은 이번 대선에서 정확히 48%대 48%로 나뉘어 고어와 부시를 각각 지지했다. "이제와서 보면 2000년 대선이 이같은 양극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필연으로 보인다" 한 정치 평론가의 지적이다.
"두개의 미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통적 기치관을 존중하는 미국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이다. 한 미국은 탄핵을 통해 클린턴을 쫓아내려고 했다. 또 다른 미국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 클린턴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대선전 일단의 저명한 정치학 교수들은 고어의 승리를 점쳤다. 그것도 56%이상 여유있는 득표율을 보이며 이긴다는 예상이었다. 경제가 호황일 때 현직이 선거에 진적이 없었다는 통념에 바탕을 둔 예상이다. 완전히 빗나갔다. ‘클린턴 변수’를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무승부의 선거결과는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 클린턴 혐오증세가 여전히 만연돼 있고 바로 이 ‘클린턴 변수’가 보이지 않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은 따라서 일종의 가치관의 대결 양상으로도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과 관련해 관심은 두가지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말 위기를 맞고 있는가 하는 게 그 하나. 또 다른 하나는 플로리다주 재개표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되고 궁극의 승리자는 누가 되는가 하는 관심이다.
민주주의 위기론은 만연한 ‘소송만능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 재개표사태를 정치권이 정치력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가져 갈 때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소송만능주의가 정치권에 까지 파급될 때 그렇지않아도 냉소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는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전망이다.
민주주의 위기론은 그러나 아직은 일부의 기우로 보인다. 소송에서 소송으로 이어지는 극단의 상황을 미국의 여론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민주주의는 때로 성가시고 완만하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국민의 소리가 모두 반영되고 국민의 중지가 모아지는 제도다" 토마스 제퍼슨의 이 격언은 아직까지 미국사회의 양식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재개표사태로 빚어진 혼란은 잠시동안의 문제로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대다수의 전망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대선의 궁극적 승자는 누가 될까. 그 해답은 하나님의 지혜를 대언한 솔로몬의 판결에서 이미 주어졌다는 생각이다. 제 자식을 살리기 위해 아이를 반으로 가르기를 거부하고 양보한 여인을 생모로 판정한 지혜다. 그 판정 방법을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썼다. "자신의 야망보다는 미국의 헌정질서, 미국의 역사, 미국의 위상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후보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테스트에 부시와 고어는 직면해 있다" 2차 테스트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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