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신학생의 총 숫자가 전세계 모든 나라의 신학생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현재 풀러, 클레어몬트, 탤봇등 남가주 인근의 미국신학교와 한국교단운영 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인 한인 신학생의 수가 2,500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프린스턴, 댈러스, 트리니티등 미 중,동부의 신학대학원들에도 한인학생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군소 한인 신학교에서 주간에, 야간에, 비디오로, 통신으로 신학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의 수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이 모두 목사가 되어 매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목회자는 미주한인사회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직업이 될 지도 모른다. 이미 수많은 무임목사들이 목회지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장로가 사장인 어느 봉제공장에는 직원중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이 4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지역의 교회에서 목회자 청빙광고를 내면 이력서가 60-80통이 몰린다고 한다.
목사되기가 너무 쉽다. 목사가 되고 싶은데 공부나 시험이 어려워서 못 됐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일이 없다. 이것 저것 하다보니 안되서 신학교에 간다는 사람, 은혜받고 하루 아침에 하던 일을 때려 치우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문제는 신학교들이다. 대책없이 너무 쉽게 목사를 배출하고 있다. 요즘 교회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자질부족의 목회자 문제가 많이 거론되지만 교계 부패상의 근저에는 신학교 문제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교단들은 위상을 높이고 교세를 불리기 위해 신학교를 운영한다. 그러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학생수를 계속 늘이는데만 급급하다보니 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졸업생만 대량으로 방출,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한국신학교는 더 이상 신학을 연구하거나 공부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일종의 목사제조기관이 되었다. 구도자적 자세로 신학교에 들어가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 목사안수를 받으러 들어가 그곳에서 구태의연한 목회기술까지 습득, 악순환의 고리는 이어지고 있다.
2000년도 교계 업소록에는 남가주에만 약 30개, 미전국에는 약 80개의 한인운영 신학교가 올라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미국신학교와 학점이 교류되는 수준의 학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학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학교도 있고, 사무실에 책상 하나 전화 한통 놓고 서류로만 신학대학인 곳도 많다. 분열도 심해 수년전에는 한 신학교가 극심한 싸움 끝에 4개의 신학교로 갈라진 일도 있었다. 이런 신학교의 ‘총장’들이 한국에 나가 박사학위를 팔고, 학생을 모집하고, 심지어 목사안수를 주면서 돈을 챙기는등 저질 신학교의 난립으로 인한 문제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등종교가 타락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성직자가 급증하는 것이다. 고려불교가 타락할 때 고려 천지가 스님으로 들끓었고 티벳의 라마불교가 타락할 때 티벳 남자의 70%가 스님이었으며 중세시대 가톨릭이 부패했을 때 유럽에 신부들이 넘쳐났다.
이 현상은 성직자가 좋은 직업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성직자가 급증하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어지기 때문에 교회등 종교기관이 급증하게 되고 성직자는 생계의 근원인 헌금을 더 거두기 위해 기복주의 신앙을 강조하게 된다. 이 모든 증세들이 지금 한국 교계가 보이는 증세와 일치하고 있다.
홍수로 물난리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한다. 요즘 크리스천들은 목사가 넘쳐나는데 존경할 목사가 없고, 교회는 넘쳐나는데 다닐 교회가 없다고 한숨을 쉰다. 교회들조차 마땅한 교역자 구하기가 쉽지 않은지 신문지상에 하루가 멀다하고 청빙광고를 낸다. 잉여목사가 수천명이라는데 왜 그럴까. 목사는 많아도 자격을 갖춘 목사는 드물다는 얘기다.
교회의 본 모습을 되찾는 개혁의 첫 단계는 신학교 정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한 도제교육을 통해 제자를 훈련하고 양성했다. 그를 좇아다니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많았지만 12명을 엄선, 3년동안 데리고 다니며 훈련시켰다.
"화 있을진저 너희는 교인 한사람을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2000년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질타했던 ‘광야신학교’ 선생 예수가 오늘날 한국인 신학교들을 보면 무엇이라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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