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이 많은 텍사스주에는 석유로 갑부가 된 사람들이 많다. 하워드 마셜도 유전을 따라 동부에서 텍사스로 이주해 와 결국 석유산업의 큰손이 되어 떼돈을 번 사람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하워드 마셜이 남긴 재산을 요즘 시가로 따지면 30억달러선으로 추산된다.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지난 94년, 자신의 나이 물경 89세 때 스트립 쇼걸 애나 스미스에 빠졌다. 플레이보이 잡지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던 당시 스물 여섯 살의 마릴린 먼로 뺨치는 육체파였던 스미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마셜 노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떼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텍사스 제일의 갑부로 통하던 마셜 노인은 애나 스미스와 결혼에 골인했다. 그렇지만 마셜 노인은 결혼생활 14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막상 마셜 노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전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노인의 약속을 담은 유언장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노인이 남긴 유언장만 해도 6개나 되고, 트러스트 관련 서류도 많았지만 어디에도 스미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더군다나 엄밀한 법의 잣대로 보면 마셜은 무일푼이었다.
마셜 노인의 전재산은 리빙 트러스트(living trust)에 들어가 있었고, 리빙 트러스트의 수혜자는 마셜 노인의 막내아들 피어스 마셜과 그 가족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마셜 노인이 사망하는 순간 리빙 트러스트를 통해 전 재산이 바로 그의 막내아들 피어스 마셜과 그의 가족의 소유가 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마셜 노인의 리빙 트러스트는 결혼 직후 마셜 노인이 임의로 바꿀 수 없는(irrevocable) 리빙 트러스토로 바꾸어 있었다. 스미스는 유일한 재산 상속인인 마셜 노인의 막내아들이 리빙 트러스트를 변조했다고 펄쩍 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스미스는 텍사스주 커뮤니티 재산(community property)의 법리에 따라 결혼 중에 늘어난 재산중 절반은 당연히 자기 몫이므로 이 돈만이라도 달라고 통사정했다. 법적으로 보면 스미스 입장은 변경 불가능한 리빙 트러스트 장치만 없었다면 결혼생활 14개월 동안 불어난 마셜 노인의 재산중 절반을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텍사스주에서는 결혼생활 중 배우자 단독 재산에서 생긴 수입은 커뮤니티 재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셜 노인의 아들 피어스 마셜은 서모인 스미스에게 단돈 한 닢도 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결혼생활 중 스미스가 돈을 물쓰듯해 아버지의 재산을 축냈다며 유산에 탐내다가는 3차 세계대전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유산과 관련이 없는 소송에서 패소하는 등 사면초가의 처지가 된 스미스는 LA 연방파산법원에 챕터 11을 신청했다. 스미스는 여기에서 자신의 재산 중 진짜 돈이 되는 것은 단 하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직 받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갖고 있는 상속권이 바로 그것이라며 이 상속권을 재산목록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되자 연방파산법원이 스미스의 상속 문제에 자연히 관여하게 되었다. 사실 일반 파산신청자는 파산법원에서 빚이나 정리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이 애나 스미스 파산 케이스를 심리한 LA 파산법원은 지난 9월27일 Marshall V. Marshall에서 마셜 노인의 유산 중 약 5억달러가 애나 스미스 몫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유언장의 유무와 상관없이 스미스는 노인의 재산 중 결혼기간에 증가한 재산의 절반 그리고 그 후 현재까지 늘어난 재산의 절반의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막내아들이 마셜 노인 모르게 리빙 트러스트를 변경 불가능하게 만들어 스미스의 재산권을 의도적으로 침해했다며 파산법원은 형벌적 손해배상까지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LA 파산법원의 결정은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인 텍사스 상속법원의 최종 심리 때까지 일단 집행이 유보된 상태다. 그리고 마셜 노인의 막내아들은 파산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상급심에 상소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소한다고 해도 막내아들의 승소에 대한 보장은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막내아들 입장에서는 텍사스주의 커뮤니티 재산의 법리에 따라 눈엣가시 같은 서모 스미스에게 그녀의 결혼생활 14개월 동안 늘어난 재산의 절반을 내주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지었던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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