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저화제
▶ 천둥번개-소나기, 연발-새이륙시간등 표현 순화
세계 항공업계가 수년째 호황을 유지하면서, 항공기 연발착현상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이것은 곧, 탑승객들이 비행기 안에 갖혀 기다리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U.S. 에어웨이스 여객기에 탑승한다면, 전에 많이 들었던 연발착관련 단어들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조종사는 기내방송 시스템을 통하여 지연경과를 수시로 안내방송한다. 하지만, 이 항공사에는 ‘천둥폭우’ 같은 위협적인 단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연’ 이나 ‘이상기류’ 같은 표현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U.S. 에어웨이스의 기내방송 지침에 따르면, 기장들은 ‘이륙지연’ 대신에 ‘새로운 이륙시간’, 또 ‘이상기류’ 라는 말 대신에 ‘불규칙한 공기’, 그리고 ‘천둥폭우’ 대신에 ‘소나기’라는 순화된 표현을 쓰도록 되어있다.
U.S. 에어웨이스 외에도, TWA, 델타, 그리고 유나이티드 항공사 등이 파일럿들에게 순화된 용어들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부 항공사들에서는 기장들에게 스피치 연습과 억양 훈련을 별도로 시키기도 한다.
최근 기내방송에 대한 이같은 새로운 접근은 항공업계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새로운 타입의 기내방송 이면에 깔린 철학은 아주 단순하다. 즉, 기장의 세련된 방송매너가 승객들로 가득찬 항공기 연발착의 지루함과, 장기간 비행으로 예민해진 승객들에게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기 기내방송은 위기관리경영과 같은 측면을 갖는다"
조지타운 대학 언어학자 콜린 카터는 말한다.
관중이 꽉들어찬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지 않는 것처럼, 천둥폭우를 통과하는 승객들로 가득찬 항공기 안에서 고함을 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항공사들은 부드럽고 친밀감있는 기내방송이 자신들의 비즈니스 향상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델타항공사의 기내방송관련 지침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종사들은 매회 비행을 할 때마다, 탑승한 승객들을 향해 다음에도 델타 항공권을 구입하도록 세일즈를 하는 셈이다. 잘 훈련되고 사려깊은 기내방송은 승객들에게 다음 번에도 우리 항공사를 택하도록 해 준다"
델타는 또, 심각한 목소리보다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항공사들은 기내방송에 농담을 섞는 것은 환영치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항공사 조종사들은 자율적으로 기내방송의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U.S. 에어웨이스의 헌트 해리스 기장은 1988년부터 ‘기내 시낭송’을 시작하여 호응을 얻었다. 평화로운 싯귀를 들려줌으로써, 승객들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려는 취지에서였다.
또,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한 조종사는 "비행기 타기가 두렵다"며 염려하는 한 승객에게 "사실, 나도 좀 겁난다"라고 농담조로 응수했다. 그는 또, 기내 선풍기를 최대치로 켠 다음, "미안합니다, 여러분. 제가 선풍기 시스템을 잘 몰라서요. 지금 배우는 중입니다"라고 농담을 해서 승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일각에서는 항공사들이 기내방송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은 자칫 승객들을 속이는 ‘말장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터나 여타 항공사 직원들은 새로운 기내방송이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며 적극 옹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카터는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는데는 언어가 동원된다. 세련된 기내방송으로 기내에 가득찬 탑승객들의 근심을 덜어 줄 수 있다면, 재론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부 조종사들은 승객들에 대해 더욱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지난달, 덴버발 시카고행 유나이티드 항공기가 일기불순으로 연착되었을 때, 허브 헌터 기장은 일기예보 프린트를 승객들에게 나눠주면서 연착사유를 설명했다.
"승객들에게 연착이 단지 변명이 아니라, 일기불순으로 인한 피치못한 선택임을 이해시키려 했다"
헌터기장은 말한다.
사실, 항공기 기내방송 접근방식은 최근 수년새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승객들을 심리적으로 안심시킬 수 있는 기내방송 필요성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최종목적지’ 같은 표현도 요즘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최종’이라는 단어가 죽음을 연상시키고, 이는 또 항공기 사고를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요즘에는 ‘이륙실패’라는 표현도 기피대상이다. 이 말이 승객들에게 뭔가 불길한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조종사들은 승객들에게 보다 사실적인 정보를 알려주고 그들의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승객들에게 사소한 것까지 시시콜콜 알려주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폭풍우가 40마일 외곽에서 불고 있다면, 조종사들은 이를 굳이 승객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직접적 위협이 아닐 경우, 미리부터 승객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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