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한국은
▶ 조광동 <본보 시카고지사 편집국장>
한국인들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대통령’이란 호칭이나 ‘씨’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다. 일반 시민들은 ‘김대중’이라고 표현하고 언론인이나 학자들은 많은 경우 ‘DJ’라고 표현했다. 김대중 대통령에 불만이 강한 사람들은 ‘대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호남 사람들은 ‘대통령’호칭을 붙이거나 ‘DJ’라고 많이들 불렀다.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역에 따라 확연하게 달랐다. 호남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를 회복시키고, 남북관계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역사에 남을 업적을 쌓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대승적인 입장으로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했다. 인사동 밥집 주인처럼 많은 경우 호남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K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번 선거에서 김대중씨를 찍었지요. 나는 호남 사람이 한번 정권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호남의 한을 풀어줘야한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실망을 많이 했어요. 대통령 언어에 진솔하고 감동적인 것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요. 김대통령이 말은 잘하는데 말이 말로만 겉도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인사정책에 호남편중이 많아요... 나는 경상도 사람들 나대는거 싫어했는데 더한 것 같아요. 지역감정요? 앞으로 더 심해 질겁니다" K교수는 서울 사람이다. 이 말을 하면서 K교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이번에 눈에 두드러지게 발견된 것은 사람들이 지방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는 거의 예외없이 주위를 둘러 보거나 목소리를 낮춘다는 것이었다. 김대중대통령을 비판할때는 큰소리로 거리낌없이 욕하던 사람도 지역감정 문제를 말할때는 태도를 바꾸었다. 그만큼 지역감정 문제는 깊이 묻힌 지뢰처럼 느껴졌다. 평소 이야기할때는 서로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식사자리나 술자리를 마련할때는 참석자의 성향과 출신지역을 챙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대해 호남출신 S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호남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김대중대통령이나 호남에 대한 비판에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 김대중대통령이 잘못하는것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김대통령을 평가하는데 너무 인색한 것 같아요. 호남 사람들이 인사를 독식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수십년간 호남이 차별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정도는 포용할수 있어야지요. 우리보고 설친다고 하지만 우리는 변한 것이 없어요. 과거 영남정권에 비하면 호남의 편중은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닙니까?" 지역감정에 대한 논쟁은 워낙 발화성이 강해서 맞대결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았다. 서로들 비슷한 그룹끼리 앉아 감정 배설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역감정이 망국적이고 지역감정을 추방해야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면서도, 사적으로 이야기할때는 지방에 대한 편견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말하는데 겉과 속이 다른 두얼굴 가운데 또하나가 남북정상회담과 김대중대통령 노벨상 수상 문제였다. K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반대할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그럴 명분이 없지요.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태도나 방법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도 공개적으로는 찬성하지만 내심으로는 반대하고 있어요. 남북정상에 목을 매단 사람처럼 질질 끌려가고 있어요. 북한의 비위를 거스르고 자극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같아요. 장기수를 저렇게 보내면서 국군포로나 납북자 이야기는 제대로 못해요. 북한 눈치를 보면서 주기만 하는거죠. 어려운 형제 도와주자고 하지만 한국 내부를 제대로 다져 놓고 회담을 해야하는게 기본적이죠. 그런데 너무 급하게 추진하고 있어요. IMF 졸업했다고 말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있어요. 김영삼정부 집권말기와 같은 상황이 오면 IMF는 또 올수가 있습니다. 한국 경제구조가 더욱 미국 의존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젠가 큰 문제가 될것으로 생각돼요" K교수의 비판은 아주 신랄했다. "김대중씨가 왜, 서두는지는 알려진 비밀입니다. 욕심 때문이지요. 노벨상을 어떻게 해서든지 타고 싶다는 생각이겠지요. 대통령 되고 싶은 소원을 풀었으니 다음에는 노벨상 소원 풀어야지 않겠느냐는 것이 술자리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K교수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중을 대변하는지는 알수 없었다. 언론인 L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씨가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론에서는 노벨상이 국가적 경사라고 계속 말하고 있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흥분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동안 김대중씨에게 노벨상 구설수가 너무 많이 따라 다녔어요. 노벨상을 너무 의식하는 것처럼 비쳐진 것이 노벨상에 대한 의미를 반감시켰다고 할수 있지요. 이런 말들을 하지요. 노벨 평화상이 뭐 그리 대단해서 노벨상 노벨상 하느냐고요.
매년 노벨 평화상이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노벨상이 국가적 경사처럼 너무 떠들때는 우리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언론인은 김대중대통령 노벨상 수상 저지활동을 하고 있는 이신범 전의원 이야기를 했다. 언론에서는 이신범씨를 매도하지만, 김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영삼 전대통령 이야기도 꺼냈다.
"김영삼씨가 광대처럼 행동할때가 있어요.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잃고 말을 막한다고 언론에서 김영삼씨를 공격하지요.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이 김영삼씨를 싫어하고 비난하면서도 김영삼씨 말에 시원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대리만족을 시켜 준다고 할까요. 남북문제에 대해 김영삼씨가 노골적으로 김정일씨를 비난하고 나섰어요. 김대중대통령이 김정일위원장에게 말려들고 있다면서 김정일씨의 남침야욕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어요. 이런 비난에 속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수 있다는것입니다"
이말은 한국사회의 국론이 분열될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기도 했다. 남북문제를 놓고 한국사회가 사상 대립으로 들어갈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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