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펜싱(검술)영화중 기억에 남는 것들로는 에롤 플린이 주연한 ‘로빈 후드의 모험’과 ‘시호크’ 그리고 진 켈리가 나온 ‘삼총사’와 스튜어트 그레인저가 주연한 ‘스카라무슈(혈투)’등이 있다. 멋쟁이 정의한들이 날렵한 동작으로 긴칼을 휘두르며 악인을 제압하는 장면은 지금도 가끔 TV 화면으로 볼 때면 내 가슴을 흥분에 떨게 한다.
그러나 이들 영화보다 팬들의 사랑을 가장 뜨겁게 받고 있는 펜싱영화는 조로 영화일 것이다. 검은 마스크에 검은 망토 그리고 검은 모자와 검은 옷을 입은 조로가 느닷없이 말을 타고 나타나 적을 무찌른 뒤 날카로운 칼끝으로 벽에 조로의 마크인 Z자를 새기고 사라지는 모습은 몇번을 봐도 근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조로 영화의 원조는 올림픽 체조선수 못지 않게 몸놀림이 날렵하고 유연했던 더글러스 페어뱅스 시니어가 주연한 무성영화 ‘조로의 마크’(The Mark of Zoro·20·사진)다. 로빈 후드 같은 의적인 조로의 얘기는 흥미진진해 지금까지도 계속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작으로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앤소니 합킨스 및 캐서린 지타-존스가 공연한 ‘조로의 마스크’(98) 가 히트한 바 있다. 그 이전에도 조로 영화는 여러편 만들어졌는데 조지 해밀턴이 나온 ‘조로, 명랑한 칼날’을 비롯해 ‘조로의 그림자’와 ‘조로 다시 달리다’ 등이 그것들로 심지어 프랑스 미남배우 알랑 들롱도 조로로 나왔었다. 그리고 조로의 모험담은 요즘도 디즈니 TV에서 옛날에 만들어진 30분짜리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다.
페어뱅스의 ‘조로의 마크’는 91분짜리로 감독은 프레드 니블로. 이 영화는 논스탑 액션에 코미디 터치를 절묘하니 배합시킨 오락영화의 백미로 페어뱅스의 첫 펜싱영화이자 그의 최고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가 스페인 땅이었던 19세기. LA 시장의 아들 돈 디에고(더글러스 페어뱅스)는 스페인서 공부하던 중 아버지가 시장자리를 독재자 돈 루이스에게 물려주면서 부모 곁으로 달려온다. 돈 디에고는 새 시장이 사악한 부하 완 라몬 대위와 함께 시민들로부터 혈세를 뜯어내 치부하고 그들을 학대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 의적 조로로 변신해 이들과 대결한다.
조로 얘기가 재미있는 것은 돈 디에고가 자신이 조로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낮에는 사치와 가십을 즐기는 어리석은 귀족노릇을 하며 아버지의 경멸을 받다가 밤이면 칼 잘 쓰고 위트 있는 조로로 변신, 시장으로부터 돈을 빼앗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멋쟁이 의적이라는 점. 로맨틱한 영웅이요 신비로운 밤의 검객 조로의 정체를 캐내려고 완과 그의 멍청한 부하 페드로(노아 비어리) 상사는 혈안이 되나 매번 조로의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조로는 마치 곡예 하듯 칼을 휘둘러 역시 명검객인 완도 그를 당해내지 못하는데 조로와 완의 마지막 칼에서 불꽃이 튀는 필사의 결투장면은 조로 영화에서 제일 박력 있는 장면이다.
사나이들의 액션영화에 낭만적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조로와 돈 루이스의 질녀 롤리타의 로맨스. 롤리타는 낮의 돈 디에고의 치기에 그를 조소하나 조로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둘은 사랑의 꽃을 피우게 된다.
‘조로의 마크’는 페어뱅스가 존스턴 맥컬리가 쓴 조로 이야기 ‘카피스트라노의 저주’를 읽고 감명을 받아 영화로 만들게 됐었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과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고 이로써 페어뱅스는 그전까지의 플레이보이와 서부 건맨의 이미지를 벗고 진짜 활극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에너지와 액션과 눈부신 칼싸움 그리고 위트와 로맨스가 있는 조로 얘기는 1940년 폭스가 루븐 매물리언 감독을 고용해 무성영화와 같은 이름으로 다시 만들었다. 타이론 파워가 조로, 바질 래스본이 악질 에스테반 대위, 그리고 린다 다넬이 롤리타로 각기 나오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조로 영화 중 가장 맵시 있고 재미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잘 생긴 파워가 명연기를 하는데(이 영화로 조로는 그의 대명사처럼 됐다) 화려하고 지적이며 우아한 이 영화에서 파워와 래스본이 맞붙는 마지막 칼싸움은 눈알이 돌아가고 심장이 쿵쿵대며 뛰는 장려하고 스릴 있는 장면이다.
페어뱅스의 ‘조로의 마크’가 명오르가니스트이자 무성영화 작곡자인 크리스 엘리옷이 연주하는 거대한 UCLA의 오르간 반주와 함께 10월3일 하오 7시30분 로이스 홀에서 상영된다. 영화상영 전 엘리옷의 오르간 음악연주 및 20년대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이번 연주는 로이스 홀 오르간 시리즈의 개막 공연이다. 입장료 7~10달러. (310)825-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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