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싱 소설로 호평받는 복싱 트레이너 제리 보이드
몇주 전까지만 해도 ‘LA 복싱 클럽’에서 ‘F.X. 툴’이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높은 천장 아래 푸른색 복싱 링이 있는 이 건물에서 샌드백을 치며 운동하는 남녀선수들은 F.X. 툴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운동하는 이들은 소위 전설적 존재라는 69세의 아일랜드인 ‘툴’의 흔적조차 본 적이 없다. 툴은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휴식시간에 다친 상처를 치료하는 컷맨(cut man)이며 LA의 한 복싱경기장을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적이며 동시에 시적인 복싱 소설 ‘불타는 로프: 코너에서 본 이야기(Rope Burns: Stories From the Corner)’로 극찬받은 저자이다.
F.X. 툴의 본명은 제리 보이드. LA 인근 복싱계에서는 모두가 아는 유명한 트레이너이다. 보이드는 키가 크고 비쩍 말랐으며 짧은 은발에 수염을 깔끔하게 다듬고 거북껍질로 만든 둥근테 안경을 썼다. 프로복서보다 더 프로같은 모습의 보이드는 평상복 차림으로 복싱장내에서 분주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심하게 일그러진 코와 일부 잘라져 나간 오른쪽 귀만이 그가 예전에 복서의 삶을 살았다는 역사를 증명해 준다.
제랄덤 보이드란 이름으로 태어나 세례받은 컷맨 보이드의 삶은 길게 드리워진 장막을 하나씩 걷어내는 것처럼 흥미롭다. 전문 컷맨이면서 섬세한 작가인 보이드가 문학계에 갑자기 나타난 인물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30여년간 글을 써왔다.
그의 삶, 작품과 일은 "맞을 때까지 한 소년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F.X. 툴의 말로 요약된다. "복싱에 있어서 내 아버지"라고 말할 정도인 보이드의 트레이닝 파트너 덥 헌틀리조차 그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아닐 정도로 개인적 친밀감은 조심스럽게 분리된다.
그의 필명 프랜시스 제이비에 툴(Francis Xavier Toole)은 16세기의 교사이자 철학자, 예수회 출신 성인에 대한 경의 표시이면서 배우 피터 오툴에 대한 경의의 제스처다. 이 이름으로 그는 단편 소설, 희곡과 장편을 써왔다. 작품의 주제는 모험, 신앙과 행운, 믿음과 불신에 대한 명상들로 언제나 사태의 양면, 만약이란 가정,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즐겨 다뤄왔다.
아주 오랫동안 그의 작품은 출판되지도 않았고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지만 그는 복싱과 집필생활은 별개의 세상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복싱을 주제로 글을 쓸 생각조차 안했다. 그동안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편지를 수집한 보이드는 "거절당할 때마다 강타를 맞고 쓰러졌다. 마침내 다시 일어났지만 용기가 아니라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했어야만 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보이드가 동네 복싱 체육관에 출근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이지만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1930년대 중반 빌 스턴이나 클렘 맥카티와 같은 아나운서들이 중계하는 라디오를 귀기울여 듣는 복싱 팬이던 자기 아버지와 그 아들인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이드의 이야기는 단지 복싱경기나 영광의 순간을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의 소설은 경기장을 넘어선 생존의 이야기이며 한 인간이 자신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며 어떻게 추락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인생 역정을 주제로 한다. 작년에 툴의 작품을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문학 저널 ‘Zyzzyva’에 실어준 하워드 정커는 보이드의 소설을 기본적으로 고전적인 무용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F.X.는 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강한 정신의 목소리로 글을 쓴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오늘날 많은 소설이 자서전적인 것에 반해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적이다"라고 보이드의 작품을 평가했다.
보이드가 그리는 복싱의 세계는 복싱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이다. 이 세계는 거액을 벌어들이는 헤비급 챔피언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우울한 스케치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새벽, 밤 비행기를 타고 싸구려 모텔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며 심사가 뒤틀린 선수들과 탐욕스런 프로모터들도 등장한다.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출생, 가디나 인근에서 성장한 보이드는 2차대전 중에는 동네 도박장에서 구두닦이로 일했고 1949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세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스탠드업 코메디언이 되기 위해 뉴욕에서 연기를 배웠고 희곡 집필도 시도했다.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스페인어와 투우를 배우는데 시간을 보냈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양조통 청소, 시멘트 믹서 운전도 했으며 길거리에서 싸우다 귀를 잃은 리돈도 비치와 뉴욕에서는 바텐더 일을 했다. 그의 삶은 일반에게 가십거리로 회자될 수 있지만 본인에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중요성을 지녀왔다.
허모사 비치의 집에서 집필하고 체육관에서 일하는 단순한 생활을 하는 그는 현재 소설 한권을 마무리 하고 희곡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글쓰는 일 때문에 체육관의 일을 소홀히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보이드는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각막이 떨어져 나간 헌틀리를 돕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가 관리하는 선수들이 많지는 않다. 그는 "나는 늘 더 어려운 일을 좋아했다.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을 망쳐놓는다. 나는 성공하기까지 10, 20, 30년동안 글을 썼다. 그래서 내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다. 승리자는 너무나 소수다"라고 그들을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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