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양화제
▶ 대부분 입양아들 과거 단절된채 성장
입양에 관한한, 한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국가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수많은 한국고아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로 입양되었고, 그같은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 있는 한국인 입양아 수는 1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작년 한해 미국으로 입양된 1만 6,000여명의 해외 입양아들 중, 2000여명 정도가 한국인 고아들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통적으로, 입양자녀들에 대한 양육원칙은 가능한한 그들을 불우했던 과거로부터 단절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입양아들에 대한 그같은 고정관점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입양아들의 과거를 말살하는 것 보다는 그들의 뿌리를 되찾아주는 편이 성장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토머스 매스터스는 1959년, 미국인 양부모에 의해 한국에서 입양되었다.
그의 친엄마는 전쟁이후의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세 자녀를 남겨둔채 자살하고 말았다. 토머스는 삼촌에 의해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그후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후, 토머스는 철저히 미국식으로 자라났다.
서응기라는 한국이름은 토머스로 대체되었고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했다. 토머스는 성장해 가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아예 망각하게 되었다. 그 무렵, 그의 양부모는 또 한 명의 한국인 소녀를 입양하고, 이름은 메어리 제인이라고 지었다.
훗날, 토머스의 양부모는 입양한 자녀들의 뿌리를 되찾는데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한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사실, 이같은 상황은 대부분의 입양가정들이 겪고 있는 공통적 현실이다.
얼마 전 뉴저지 하스브룩 하이츠에서는 한국인 입양아들과 그 가족들이 조직한 입양아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이 컨퍼런스에는 미국 각지에서 약 400여 가정이 참여함으로써, 입양아들의 뿌리찾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여기서, 토머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석자들에게 입양아 뿌리찾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입양가정의 부모들은 이들 아동들에게 입양이라는 것은 커다란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입양을 통해서, 자신의 뿌리, 인간적 정체성, 그리고 친부모를 한꺼번에 상실하는 것이다"
토머스는 강조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또, 입양아들에게 한국문화를 되새기는 몇몇 행사가 펼쳐졌는데, 그중 동양화 실습시간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토머스는 "가장 슬픈 사실은 입양아들이 성장할 때까지는, 자신들이 과거를 상실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살아가는 점이다"라고 덧붙였다.
올해 46세의 토머스는 비단 한국인 입양아들뿐 아니라, 타인종 입양아들의 뿌리찾기 운동도 적극지원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한국인 입양아들은 신체적 부재에도 불구하고 모국문화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타민족 입양아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토머스는 말한다.
컨퍼런스 참석자 중에서는 아칸소 주에서 온 린그렌 부부가 있었다.
이 부부는 한국인 소년 앤드류를 입양하여 기르고 있다. 린그렌 부부는 앤드류가 어느정도 성장하면, 한국을 방문하여 입양되기 전까지 아들을 키웠던 대리부모를 만나게 해 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지금부터 인근대학의 한 한국인 학생으로부터 틈틈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고아들의 입양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해리 홀트이다.
해리와 그의 아내 버타는 원래, 오리건주에서 농사를 짓던 신앙심 깊은 시골사람들었다. 이들 부부가 한국고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군들에 의해 양산된 전쟁고아들의 실상을 알게되면서 부터였다.
전쟁고아 입양이 신앙적 소명이라고 느낀 이 부부는, 먼저 자신들이 8명의 고아들을 입양했고, 그후 홀트 국제아동재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이 재단을 통해서 미국 또는 유럽으로 입양된 한국인 고아들의 숫자는 3,500여명에 달한다.
토머스는 1960년대까지 자신이 동양인 입양아라는 사실을 증오하며 살았다.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졌다. 누이 제인도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제인이 지역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하여 ‘이국적 미인’으로 선발되었고, 퍼레이드에서 시장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때부터, 토머스는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후, 토머스는 경찰직을 통해 FBI 요원으로 선발되었고, 제인은 플로리다에서 보모로 일하고 있다. 토머스는 1983년 라스베가스에서 파견근무를 하던 중, 어느 날 한국인 라이언스 클럽에 초대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회의에서 난생처음 한국인들만의 집단에 섞이면서, 비로서 나의 뿌리를 자각하게 되었다"
토머스는 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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