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안젤라의 유해’라는 책을 읽었는데 너무나 옛날 우리들 얘기 같은데다 정말 재미가 있으니 읽어 보라”는 것이었다.
‘안젤라의 유해’(Angela’s Ashes)는 지난해 말 영화로 나와 그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의 권유도 있는 데다 작년에 영화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평하면서 모두들 “소설속 그 신랄하고 배꼽 빼게 하는 유머는 어디 갔는가”하고 아쉬워하던 것이 기억나 동생이 빌려준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이 책을 얼마전 아이오와 대학원으로 시창작을 공부하러 가는 아들을 데려다 주기 위해 가족이(가족이래야 달랑 셋이지만) 함께 한 대륙절반 횡단 길에 통독하다시피 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이 만나 결혼하고 또 내가 태어난 뉴욕에 있어야 했다’라고 시작되는 첫 페이지부터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겨 갔다. 이렇게 재미난 책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동생이 너무나 우리들 얘기 같다던 그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렸을 때의 삶과 사춘기 시절 교회를 다니면서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죄의식이 생각나 키득키득 대며 웃다가 또 코를 훌쩍이면서 눈물을 흘리며 혼자 야단을 떨었다.
‘안젤라의 유해’는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퓰리처상을 받은 프랭크 맥코트의 네살 때부터 열아홉살 때까지의 아일랜드에서의 삶을 적은 것이다. 아일랜드 태생인 프랭키의 아버지 말라키는 뉴욕으로 이민와 거기서 역시 아이리시인 안젤라를 만나 결혼했는데 프랭크는 그들의 장남. 그런데 무능하기 짝이없는 술주정뱅이 말라키는 뉴욕서 도저히 살 수 없어 안젤라와 4세된 프랭크 그리고 그 밑으로 졸망졸망한 동생들을 데리고 남들이 다 떠나오는 아일랜드로 역이민을 했다. 프랭크 일가가 정착한 곳은 안젤라의 친정이 있는 연중 10월부터 4월까지 비가 내리는 리메릭. 프랭크는 이 때부터 19세 때 다시 미국으로 이민올 때까지 늘 축축한 리메릭에서 번돈 다 술 사먹는 말많은 아버지와 삶에 지친 신심 굳건한 어머니 그리고 허세 부리는 신부들과 깡패 같은 선생님들에게 사랑 받고 시달리면서 성장의 이품을 겪게 된다.
이 글이 마음에 드는 것은 작가가 가난과 고통과 슬픔을 희롱하듯 유머와 위트로써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끝마다 농담이라더니 프랭크는 글 끝마다 때로는 날카롭고 야무지게 또 때로는 다정하고 자조하고 야유하듯이 유머스러하게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그 참혹한 가난과 슬픔조차 견딜만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글솜씨가 어찌나 재치 있는지 혀를 차게 된다. 이에 비해 영화는 너무나 칙칙하고 유머가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프랭크의 총명하고 위트 있는 글재주는 국민학교 때 쓴 ‘예수와 날씨’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반은 생략하고 이 작문은 이렇게 끝이 난다. ‘예수가 그 따뜻한 곳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만약 리메릭에서 태어났더라면 폐병에 걸려 한달 만에 죽었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영성체와 견진성사도 없을 것이며 또 우리는 교리문답을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그에 관한 작문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 말이다. 끝.’
작가는 단어와 문장을 종종 반복해 사용, 흥미를 더욱 북돋우는데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애,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영원한 겁벌을 강조하는 가톨릭에 대한 조소 그리고 죄의식(주로 자위행위 때문이다)과 800년간 아일랜드를 괴롭혀온 영국에 대한 증오와 애국심 등이다.
가톨릭에 대한 조소는 프랭크가 전보 배달원으로 취직해 신부에게 전보를 배달한 뒤 “신부와 수녀들로부터 팁을 기다리다가는 그들의 문지방에서 쓰러져 죽게 되고 말 것”이라는 독백에서 찾아볼 수 있고 아이리시들의 치기 어린 애국심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말라키가 한밤중에 동네가 떠나가라고 애국적 전투가를 부르며 귀가해 자고 있는 프랭크와 동생들을 깨운 뒤 “너희들은 아일랜드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가”라고 다그치는 모습에서 재미있게 드러난다. 하여튼 프랭크는 아일랜드를 위해 죽기로 여러 번 계약을 했기 때문에 견진성사를 받은 뒤 믿음을 위해 죽을 수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이 책을 살아남은 세 남동생에게 바친 프랭크는 현재 코네티컷에 살고 있는데 이 책의 속편이 지난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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