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인가, 타살인가. 아니면 단순사고인가.’
지난 5일 달리던 택시에서 뛰어내려 의문의 죽음을 한 박춘희씨(36) 사건 수사가 그동안 답보상태에서 새 국면을 맞았다.
이번 사건을 박씨의 자살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해왔던 훼어팩스 카운티 경찰국은 사고 현장에서 수습한 안경 2개중 하나가 박씨의 것이 아닌 남자용임이 확실시됨에 따라 타살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수사 방향을 확대하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사고현장에서 알만 심하게 긁힌 상태의 금테안경을 수습했으나 유족측이 10일 박씨의 트렁크를 경찰로부터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2의 안경과 손목시계가 발견됐다.
심하게 파손되고 오른쪽 테가 없는 상태의 제2의 안경및 손목시계는 사고소식을 듣고 한국서 급거 워싱턴으로 달려온 남편 남학호씨와 친정오빠인 박춘동씨에 의해 박씨의 것임이 확인됐다. 그러나 먼저 취득된 금테 안경을 11일 살펴본 남씨는‘아내 것이 분명 아니다’라며 주장했다.
본보 취재팀이 유족들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안경은 노인들이 사용하는 돋보기의 일종이며 남성용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따라 유족측은 사건해결의 주요변수로 등장한 이 안경의 실제 주인을 밝혀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다. 또 사고 당시 운전기사외에 제3의 인물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함께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따라 경찰은 강력 담당 수사관들을 수사팀에 보강하는 한편 사고 택시의 운전기사인 아슬란 타놀리(44)씨를 불러 사고 경위에 대해 재조사했다. 수사팀은 또 유일한 용의자인 타놀리씨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와 함께 11일 감식 전문가를 동원, 사고 택시에 대한 정밀 재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과 함께 박씨의 자살이나 단순 사고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먼저 성추행 흔적이 없는 점이나 소지품이 그대로 있는 점, 운전기사인 타놀리씨에 대한 첫 조사에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점등을 들어 박씨의 자살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특히 박씨의 죽음이 자살일 경우 자살동기의 키를 쥐고 있을 샌드레이 맨씨를 지난 7일(월) 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맨씨는 박씨가 죽음 직전 택시안에서 통화를 시도한 인물.
50대 초반의 흑인인 맨씨는 박씨와는 직장 부서장으로 오랫동안 친분을 가져온 사이이며 최근 다른 부서로 옮겼다.
맨씨는 경찰 조사에서‘미시시피에 있는 노모의 집에서 가족들 모임이 있어 휴가를 얻어 미국에 온 것’이라 밝히고‘한국에서 박씨가 국방부 교육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미국에 있을 거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건네준 것’으로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맨씨는 사고 이틀 후인 월요일, 이혼한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워싱턴으로 왔으며 현재 근무지인 대구에서 한국인 여 종업원과 동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가능성과 함께 수사팀은 단순사고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수사팀은 먼저 뒷문이 완전히 닫기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 출발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으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그러나 차체 결함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를 펼 방침이다.
한편 유족들은 경찰이 자살에 수사 초점을 맞춰온 점과 사건 해결에 성의가 없다는 점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남씨는“아내가 원만한 성격이라 가정적으로나 직장에서 모두와 사이가 좋고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타살 또는 위협적 상황에서 부득이 하게 차에서 탈출하다 사고를 당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11일에는 주미 대사관 김욱 총영사, 조현동 영사와 최상진 목사등을 만나 이번 사건 해결에 대사관과 한인사회에서 적극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도했다.
‘토요일밤의 미스터리’라 불리는 이번 사건은 뚜렷한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는데다 택시기사 한명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어 획기적인 계기가 없으면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 안팎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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