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선화제
▶ ’침몰선 선적국 소유’ 판결로 해양탐사 큰 변화일듯
범선을 이용한 항해와 탐험 초창기에 스페인은 쿠바와 안데스 산지로부터 필리핀의 마닐라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해양제국을 건설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스페인 해양세력의 최정점기였던 1580년부터 1640년 사이, 스페인은 포르투칼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식민지를 보유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스페인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수세기에 걸쳐, 수천 척의 스페인 함선들이 대양에서 침몰했기 때문이다.
침몰원인은 대개 폭풍과 사고, 그리고 해적의 습격 등이었다. 그중, 많은 선박들에는 금, 은, 에머럴드, 다이아몬드, 도자기, 기타 값진 금속 등이 적재되어 있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보물선탐사 전문가들과 해양 고고학자들이 이들 침몰선들을 인양하는 동안, 스페인은 별 말이 없었다.
유명한 보물선탐사 전문가 멜 피셔가 플로리다 키에서, 1622년에 침몰한 대범선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아토차’ 호를 발견했을 때도, 스페인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피셔는 이 갤리선에서 무려 4억달러어치의 금은보화를 인양했다. 그러나, 스페인에는 인양된 대포 중 한 문만 기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스페인은 입장을 선회하여 과거에 침몰했던 배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최근 버지니아주의 한 법정 소송에서 승리하는 개가를 올렸다.
지난 7월 초 버지니아 대법원 항소심은 200년 전, 버지니아 해역에서 침몰한 두 척의 전함에 대한 소유권이 스페인 측에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날벼락은 맞은 사람은 보물선인양 전문가 벤 벤슨이었다.
그는 이 두 척의 전함에, 옛날 동전과 진귀한 금속 등 약 5억달러어치의 보화가 실려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스페인의 입장변화가 보물찾기의 전성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판결은 또, 과거에 잃어버렸던 자국의 침몰선 탐사에 대한 스페인의 본격적인 개입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이 보물선 인양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단순히 금전적 이해관계 뿐이 아니다. 스페인은 보물선 인양을 자국의 문화적 유산, 역사적 가치, 그리고 침몰선들에 경의 같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반면에 이번 보물선 인양을 주도한 ‘시 헌트’ 사의 사장 벤슨은 이번 판결에 항소할 뜻을 비쳤다.
그는 보물선 인양을 위해 준비작업 및 법률수수료로 200만달러를 지출했다.
"그야말로 충격이다. 이번 판결을 지지하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다. 보물선 인양해역은 국제법상으로 어느 국가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해상이다"
벤슨은 말한다.
이에 대해 스페인 측 변호를 담당한 워싱턴의 제임스 굴드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보물선 인양가들이 이번 판결을 하나의 경고로 인식할 것이다"
또, 스페인의 문화부 장관 라파엘 퐁가도, 이번 판결은 스페인의 과거유산 소유권 주장의 한 전환점을 기록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또, 향후 스페인은 과거의 문화유산을 평가하고 조명하기 위해, 보물선 탐사, 학문적 평가, 박물관 전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보물선 소유권 소송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벌어진 두 척의 침몰선, 라 갈라와 주노에 대한 소유권 소송에는 스페인 뿐 아니라, 영국, 미국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로 경주견 그레이하운드를 뜻하는 라 갈라 호는 1750년에 침몰했고, 주노호는 1802년에 침몰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침몰선에 관계된 국가들이, 갈수록 적극적으로 보물선 소유권 분쟁에 끼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이 문제와 관련, 미 연방법무부는 스페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법무부의 공식입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수천 척의 침몰선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상업적 탐사와 약탈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버지니아 항소심도 법무부와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법원측은 판결문에서 "침몰선들의 주권을 상업적 영리추구에 맡길 수 없다. 침몰선들이 원래의 소유국에 귀속된다는 것이 국가간 합의다"라고 판시했다.
많은 법률전문가들은 이번 판결로 버지니아 해역 이외의 다른 해역들 또는, 스페인 이외의 다른 국가들이 제기한 보물선 소유권 소송에도 일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까지 보물선 인양에 관한 전통적인 규정은 ‘인양자 우대’의 원칙이었다.
대영제국의 초대형 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 인양 과정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보물선 인양가들의 권리가 보장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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