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라디오를 트니 영국의 명우 알렉 기네스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요즘도 가끔 TV를 통해 방영되는 기네스가 주연한 ‘콰이강의 다리’를 볼 때마다 늘 “저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나 아니면 죽었나”하고 궁금해했었는데 이제 그의 사망소식을 듣자니 고등학교 때 ‘콰이강의 다리’를 보면서 그의 명연기에 감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네스는 영국 남부 피터스필드의 자택에서 몸이 아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일 사망했다. 향년 86세. 사망원인은 간암이라고 한다. 기네스가 사망함으로써 로렌스 올리비에와 랄프 리처드슨 및 존 길거드(지난 5월21일 사망)등 한 세대를 풍미했던 일단의 영국 최고의 연기파들이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다.
기네스는 젊은 세대에게는 ‘스타 워즈’의 신통력을 발휘하는 도사 오비-완케노비로 그리고 나이를 먹은 세대에게는 ‘콰이강의 다리’(57·사진)의 영국군 대령 니콜슨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네스는 행진곡 ‘보기대령’으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자존심 강하고 고집불통인 니콜슨역을 하지 않는 듯 완벽히 연기해 오스카상을 받았다. 그는 1980년에는 오스카 명예상을 받았다.
비극과 심각한 드라마 등 못 해내는 역이 없는 다재다능한 성격파 배우였던 기네스는 그러나 무엇보다 코미디에 재질이 뛰어난 배우였다. 예술적 코미디를 양산한 일링 스튜디오의 40년대 후반~50년대 중반의 작품들인 ‘카인드 하츠와 코로네츠’ ‘라벤더 힐 도둑떼’ ‘흰옷 입은 남자’ 및 ‘레이디킬러즈’등은 기네스의 코미디 재주가 한껏 발휘된 영화들이다. 특히 ‘카인드 하츠-’에서 기네스는 혼자 1인8역을 해 국제적 스타가 되었다.
1914년 4월2일 웨스트 런던에서 서민의 아들로 태어난 기네스는 매우 수줍어하는 아이로 혼자 극장 모형을 지어놓고 상상의 연극을 즐기기를 좋아했다. 공부는 잘했지만 연극학교에 들어갈 돈이 없어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다 집어치우고 항상 존경하던 배우 존 길거드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연극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를 1등으로 나오고도 일자리가 없어 굶다시피 할 때 우연히 한 극장에 들어가 배역을 달라고 사정, 운 좋게 1인3역을 하면서 무대배우로서의 길이 열렸다. 이어 계속 셰익스피어 연극에 출연,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첫 햄릿역은 24세 때 올드 빅 극장에서였다.
2차대전 때 해군으로 활약한 뒤 종전후 다시 무대에 서면서 영화배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장래를 열어준 사람은 데이빗 린 감독. 기네스는 린의 ‘위대한 유산’(46)으로 스크린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는데 이어 린과 다시 일한 ‘올리버 트위스트’(48)에서의 패긴역으로 연기파로서의 탄탄대로에 들어섰다. 그 뒤로 린과 기네스가 함께 일한 영화들로는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의사 지바고’ ‘인도로 가는 길’등이 있다.
스크린의 스타가 된 기네스는 그러나 자신을 한 곳에만 묶어 놓기를 싫어해서 계속 연극에도 출연 1964년 ‘딜란’으로 토니상을 받았다. 그는 또 TV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명스파이 소설작가 존 르 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의 노련한 스파이 스마일리역이다.
무대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던 기네스는 실생활에서는 대중 앞에 나타나기를 몹시 꺼려하는 비밀에 싸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친구인 로렌스 올리비에는 기네스를 ‘속이 깊은 다크호스’라고 불렀었다. 그는 또 매우 겸손했는데 자서전 ‘변장 속의 축복’에서 “나는 내가 올리비에, 리처드슨, 길거드와 결코 같은 급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고 적었다.
듣기 좋은 바리톤 음성과 표현력 강한 푸른 눈 외에는 별 특색이 없는 기네스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무대와 스크린에서 활동한 가장 섬세하고 유연하며 또 민감하고 재능 있는 연기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한가지 아이로니컬한 것은 기네스는 자신을 돈방석 위에 앉게 해준 ‘스타 워즈’를 횡설수설하는 진부한 영화라며 경멸했다는 사실이다.
올드팬들에게는 그레이스 켈리와 공연한 ‘백조’(56)로도 친숙한 기네스는 1988년 영화 ‘작은 도릿’으로 마지막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고 1994년 TV작품 ‘낯선 땅’을 마지막으로 연기생활에서 은퇴했었다. 위대한 배우가 또 한사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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