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뼈저린 인자들인 소외감과 고독 그리고 까닭 모를 분노와 상처를 그보다 더 잘 표현해 보여준 배우가 어디 있을까. 이런 것들을 연기했다기보다 안고 살다간 제임스 딘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영원한 청춘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24세라는 나이에 살별 같은 빛과 삶을 살고 과격하니 죽어 그의 전설은 더욱 비극적이요 흔적이 깊다.
늘 속을 끙끙 앓는 듯하던 아름다운 고독자 제임스 딘의 삶이 ‘제임스 딘: 고안된 삶’(James Dean: An Invented Life)이라는 제목으로 TNT-TV에 의해 내년 방영을 예정으로 현재 LA서 촬영중이다. 감독은 50년대 딘과 함께 뉴욕서 연극과 TV배우 노릇을 하며 출세를 꿈꾸던 마크 라이델(헨리 폰다의 유작 ‘황금호수 위에서’감독). 딘역은 잘 알려지지 않은 TV배우 제임스 프랭크(22)가 맡았다. 그런데 딘의 얘기는 1994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마이클 맨 감독이 만들려고 했었으나 당시 디카프리오가 너무 어려 1~2년 기다렸다 만들기로 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TNT 영화는 딘이 9세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찾아 그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딘의 성격 형성은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망과 아버지로부터의 버림받음에 의해 크게 좌우된 것 같다는 게 주위의 얘기다. 생전 아버지의 사랑을 간절히 찾았던 딘의 이야기는 그의 데뷔작 ‘에덴의 동쪽’(55)에서 몸부림치며 아버지의 사랑을 요구하던 칼에 의해 재현된 바 있다.
1931년 2월8일 인디애나 매리온에서 치과기공사인 아버지 윈턴과 시를 쓰는 어머니 밀드레드의 외아들 제임스 바이론 딘(미들네임은 어머니가 시인 바이론의 이름을 따 붙인 것)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LA로 이사했으나 어머니가 사망하자 아버지는 딘을 인디애나 페어마운트의 고모집으로 보냈다.
학창시절 딘의 성적은 나빴지만 운동과 연극에는 뛰어났다. 10년뒤 다시 LA로 와 잠시 산타모니카 칼리지를 다니다 UCLA로 옮겼다. 이때 그는 극장 안내원, 주차장 발레, 영사 기사, 엑스트라 및 TV 광고에 나오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연기파 선배 제임스 위트모어의 조언대로 1951년 뉴욕으로 가 잡일을 하면서 연극 ‘재구아를 보아라’에 출연, 비평가들로부터 ‘재능 있는 신인’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이어 TV와 연극에 잇달아 출연하며 호평을 받는데 반항적 기운 때문에 감독과의 충돌이 심했다.
엘리아 카잔 등이 운영하는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다 카잔에 의해 그의 작품 ‘에덴의 동쪽’의 주연으로 발탁된다. ‘또다른 브랜도’라 불리며 딘의 명성은 치솟기 시작하는데 영화 촬영중 만난 배우 피어 앤젤리(‘내일이면 늦으리’)와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면서 딘은 큰 상처를 입는다. 앤젤리는 딘의 유일한 사랑이었는데 딘과 약혼까지 했던 앤젤리가 왜 딘을 버리고 가수 빅 다몬에게 갔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딘은 ‘연기에 살고 연기에 죽는’식으로 극중 역을 몸소 살고 사랑했다. 그는 연기에 대해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경증세를 표현하는 가장 논리적 수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연기에 자신의 영육을 모두 던졌던 딘은 그래서 ‘에덴의 동쪽’촬영이 끝나자 상실감 때문에 의상실에서 울었다고 한다.
50년대는 미역사상 최초로 10대가 분에 넘치는 풍요를 누렸던 시대. 그들의 부모들이 자신들이 못 누린 혜택을 자식들에게 버리다시피 제공하면서 10대들은 까닭 모를 반항으로 부모들에게 보답했다. 반항의 시대를 ‘딘의 시대’라고도 했는데 이때 나온 영화가 당시 10대의 외적 내적 상황을 잘 묘사한 ‘이유 없는 반항’(55).
니콜라스 레이가 감독한 이 영화는 지금도 ‘10대의 바이블’로 남아있는데 딘을 비롯해 그와 공연한 나탈리 우드와 살 미네오가 모두 비명횡사한 저주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딘이 교통사고로 죽은지 4주 뒤에 개봉됐다.
딘의 마지막 영화는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자이안트’(56·`사진). 록 허드슨과 리즈 테일러가 공연한 이 작품에서 딘은 텍사스의 대목장주 허드슨의 목장 잡역부로 나온다. 나는 딘의 영화중 여기서의 딘의 모습을 가장 좋아하는데 고독한 여우 모습의 그가 남몰래 연모하는 허드슨의 아내 테일러를 카우보이 모자로 가리운 도둑고양이의 눈동자로 훔쳐보며 탐내는 모습이 아름다울 만큼 쓸쓸하다.
딘은 1955년 9월30일 은빛 포쉐 스파이더를 타고 시속 85마일로 달리다 중가주 파소 로블레스에서 다른 차와 충돌 처참하게 죽었다. 경찰로부터 과속티켓을 받은 지 2시간15분 뒤였다.
이글스의 노래처럼 딘은 ‘너무 빨리 살았고 너무 빨리 죽은’ 우리 세대 최초의 반항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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