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이용해 미국인과 생활하며 현지영어를 익혀가겠다는 꿈을 갖고 뉴욕을 찾은 어린 한국청소년들이 미국인 민박 가정에서 혹독한 대우와 위협까지 당하다 결국 일정이 끝나기도 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민박가정을 나오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 `북미언어포럼’ 단체를 통해 미국으로 어학연수 겸 민박프로그램을 통한 미국 문화의 이해를 위해 12명의 한국 초·중·고생은 지난 23일 인솔교사 오석숙(32세)씨와 함께 JFK 공항을 통해 뉴욕에 도착했다.
이들은 공항에서 현지 담당업체인 `나셀 오픈 도어(Nacel Open Door)’측의 교사 3명을 만났으나 학생들과 인솔교사는 민박가정에 학생 한 명씩 배치되기로 했던 원래계약과 달리 2-4명씩 그룹으로 짝을 지어 한 가정에, 그것도 민박가정이 아닌 마중 나온 교사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다.
또한 미국인 교사들은 각자 담당하게 된 3-4명의 학생들을 민박가정 당 한 명씩 배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학생들을 자신들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지하실이나 정리도 되지 않은 방에서 합숙을 시켰다.
그리고 한 미국인 교사는 한국에서 유치원생들이나 배울법한 수준의 영어를 가르치려다가 학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현장학습이라는 핑계를 대며 공원산책을 추진, 오후 현장학습으로 대신하는 등의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인솔교사 오씨는 이 같은 문제점을 제기하다 오히려 수업에 지나친 간섭을 하려든다는 이유로 인솔교사직을 박탈당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생활상 또한 한국에서 설명회 때 들었던 것과 판이했다. 뉴욕일원 민박 가정에 배치된 8명 학생의 잠자리는 정리조차 되지 않은 너저분한 방에서 두 세명이 함께 잤고, 특히 뉴저지로 배치된 학생 4명은 부엌 옆에 달린 작은 쪽문을 통해 연결된 지하실에서 잠을 잤다.
학생들의 불평과 불안감이 고조되자, 직위를 박탈당한 인솔교사는 한국 회사측의 무성의로 일부 학부모와만 통화를 해 허락한 학부모의 동의를 얻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정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본보기자는 27일 자녀와 학생을 데려오기 위해 뉴저지주 미국인 교사 집을 향하는 인솔교사 오씨와 한 학부모 등과 동행, 이같은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비교적 조용하고 부유해 보이는 뉴저지 오라델 지역에 위치한 이 교사의 집에 들어서 부엌 옆에 달린 작은 쪽문으로 내려간 지하실은 겉보기와는 달리 쾨쾨한 곰팡이 냄새가 났고, 장난감과 창고박스 등이 구석에 쌓여 있었으며, 바닥은 카펫도 깔려있지 않아 싸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함께 지하실에서 짐을 챙기던 윤성복(10세, 운천초등학교)양은 "곰팡이 냄새와 찬 공기 때문에 비염이 재발된 것 같아 고통을 느낀다"며, "이불도 얇은 뜨개질로 된 것 하나만 달랑 덮고 잤다"고 밝혔다.
이 집에 머물렀던 또 다른 여학생 이승하(12세, 운천초등학교)양은 "어제는 지하실에서 잤고, 그 전날은 주인집 딸 방에서 잤지만, 침대가 일인용이어서 함께 있던 성복이는 바닥에서 잤다"고 말했다.
미국인 교사의 딸 방으로 안내된 일행은 방안에 몸집이 큰 개가 철제 우리 안에 갇혀져 방에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 두 여학생은 이 집에 함께 기거한 두 명의 남학생들 중 한 명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자, 미국인 교사는 개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큰 개를 학생의 얼굴 앞까지 데리고 와 놀래키고, 뉴욕에 있는 누나와 떨어져 울고 있는 한 남학생에게는 소리를 높이 지르며 야단을 쳤다고 전했다.
개가 무서워 피하다 계단에서 넘어져 시계까지 깨졌다는 이승하양은 "훗날 유학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미국초행길에 너무 힘든 경험을 했다"며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엄마와 인솔교사의 손에 이끌려 숙소를 떠난 윤성복양과 이승하양은 "함께 지내던 학생들끼리 가져온 용돈을 모아서 공항으로 가자는 얘기까지 할 정도로 힘들게 지냈다"고 밝혔다.
혹독한 대우와 교사들의 무성의로 현지 영어는 배우지도 못한 채 돌아서는 어린 한국청소년들의 모습은 한인사회에서 이뤄지는 각종 조기유학 병폐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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