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방의회가 상속제를 전면 폐지하는 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사망세’라는 공격을 받는 상속세의 폐지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공언하고 있어 상속세의 폐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나 결국 상속세는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민들 사이에 상속세 폐지론이 확산되고 있다.
부의 재분배라는 경제 사회적 정의라는 원칙에 입각해 대표적 누진세의 일종으로 자리를 지켜왔던 상속세를 없애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에 대한 가장 최근 통계가 나와 있는 1997년을 보면 미국민이 부담한 상속세 총액은 200억달러로 이중 반 정도가 사망자 3,000명이 남긴 각각 500만달러 이상의 재산으로부터 나왔다.
같은 기간 상속세 과세대상 유산은 4만7,597건로 그 해 사망자의 2.1%가 상속세를 내야하는 재산을 남겼다. 건당 평균 상속세는 43만달러. 반면 상속세 납부 건수의 40% 이상이 60만~100만달러의 재산으로 평균 4만5,810달러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이처럼 미국민의 극소수만이 실제 상속세를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속세 폐지론은 확산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는 백인 부유층과 공화당에 의해 주장됐으나 이제는 소수계와 민주당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같은 시대적 변화는 지난 14일 연방상원이 찬성 59, 반대 39라는 압도적 표차로 상속세 폐지안을 통과시켰을 뿐 아니라 이에 앞서 연방하원에서도 65명이나 되는 민주당 하원의원이 당의 방침에는 아랑곳 않고 찬표를 던졌던 사실에 의해서도 명쾌히 드러난다.
상속세 폐지론이 확산되는 이유는 물론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미국의 장기적 호경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속세와 무관한 사람들 마저도 호경기가 계속됨에 따라 언젠가 자기도 부자가 돼 자녀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에드워드 울프 교수(뉴욕대·경제학)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인구증가까지 감안해도 1983~1998년 백만장자의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 미국 가정의 약 5%가 백만장자가 됐다.
미국이 상속세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16년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 시절로 현행법 아래서는 2000~2001년 67만5,000달러, 2002~2003년 70만달러, 2004년 85만달러, 2005년 95만달러, 2006년부터는 100만달러까지 상속세가 면제된다.
지난달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민의 60%가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17%만이 "상속세의 폐지는 부자만을 이롭게 한다"고 답했다. 17%도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2.1%(1997년 현재)보다는 훨씬 높은 것.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민의 53%가 "부자가 된 것은 본인들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32%가 "부자가 된 것은 운이 좋거나 상속을 받는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금년 초에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60%가 "미국에서는 빈민들도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될 기회가 있다"고 답변, 1993년 여론조사 때 나타났던 42% 보다 많아지면서 과반수를 넘어섰다.
또 1998년 시카고 대학 전국 여론조사연구소가 행한 여론조사에서는 25%가 "빈부차 감소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24%가 "빈부차 감소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답해 근소한 차이지만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년전 시카고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빈부차 감소를 위해 정부개입을 지지한 응답자가 30%, 반대한 응답자가 20%였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들은 비단 상속세뿐 아니라 넓게는 ‘부의 재분배’ 자체에 대한 미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찰스 랜젤 연방하원의원(민·뉴욕)은 이같은 국민의 변화 요구가 의회에 반영되는 데 대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생길 것에 대해 얼마만큼 가져가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국민의 인식이란 변덕이 심하고 경제가 어려워질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지만 호경기와 함께 미래의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지배하는 한 상속세 폐지론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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