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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선 탐험가 클리포드 ‘키드’선장의 배 찾은듯
얼마 전 마다가스카르 해역에서는 전설속의 해적선 ‘어드벤처 갤리’의 잔해로 보이는 해저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베리 클리포드가 지휘하는 해저 발굴단은 수중 20피트 바닥에 쌓여있는 벨러스트 파일을 발견했다. 벨러스트 파일이란 선박의 균형을 유지할 목적으로 선적하는 무거운 돌들을 말하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전설적 해적 윌리엄 키드가 사용했던 어드벤처 갤리 호는 중량 287톤의 해적선이었다. 최초의 발견지점에서는 벨러스트 파일 외에도, 노걸이 및 중국산 도자기 파편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들 잔해가 키드 선장의 해적선이라고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발굴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만일, 이것들이 어드벤처 갤리호로 판명될 경우, 이는 클리포드의 기념비적 업적인 ‘와이다’ 호의 발견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와이다 호는 1717년, 메사추세츠주 웰플리트 해역에서 침몰한 해적선이었다.
어린시절, 클리포드는 케이프 코드에서 악명높은 해적선 선장 윌리암 키드에 관한 전설을 들으며 성장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키드 선장은 원래 1645년께 장로교 목사가 되었었다. 그런데, 그후의 역사적 기록에는 키드가 44년간 카브리해에서 합법 민간무장선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나중에, 키드는 뉴욕시에 정착하여 부유한 사교계 명사인 사라 오트와 가정을 꾸몄다. 당시, 이 커플은 월스트리트에 자산을 보유하고, 인근 트리니티 교회에 가족석도 소유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후 키드의 삶은 다시 불안정해졌다. 이듬해, 영국으로 돌아간 키드는 또 다시 무장선의 일원이 되었다. 여왕에 의해 고용된 이 배의 임무는 전시에 적국의 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해적으로서의 키드선장의 악명은 1697년, 그가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포르투칼 군함과 전투를 벌이고, 화란의 갤리선을 약탈했으며, 대영제국의 연합상선들을 공격했다.
급기야 그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가운데, 키드는 마다가스카르 해역의 역풍을 견디지 못하고 어드벤처 호를 버린채 대서양 쪽으로 도주했다. 그후, 키드는 보스턴에서 체포되어 런던으로 압송되었고, 이틀간의 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키드는 끝까지 참회하지 않았으며, 1701년 5월 23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설에 따르면, 키드는 여러 장소에 금은보화를 은닉했다고 한다. 그는 또,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전리품 위에 함께 매장함으로써, 사자들의 망령이 전리품을 지키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클리포드가 어드벤처호 탐사에 나선 계기는, 3년전 케이프 코드 박물관장이자 역사가인 켄 킨코르가 보여준 한 장의 문서 때문이었다.
이 문서는 테오 터너라는 한 해적이 어드벤처 갤리 호의 침몰지점을 기술하고, 그 사실성을 맹세하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클리포드는 케이블 TV 디스커버리 채널로부터 후원자금을 확보했다.
그후, 킨코르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프랑스의 국립문서박물관에서 어드벤처 호의 정확한 침몰지점이 명시된 지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클리포드는 마침내 자력계와 기타 첨단장비들로 무장한채 마다가스카르 해역에 잠수했다.
탐사대 중에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카레라맨, 클리포드의 아들 브랜던, 그리고 다른 10명의 대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킨코르가 제공한 지도는 X-레이 사진처럼 정확한 것이었다. 클리포드는 잠수 이틀만에 배의 잔해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클리포드가 침몰선 탐사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그 전에는 구명대원, 체조선생, 그리고 건축기사로 활동했었다. 초창기 그의 탐사동기는 순전히 사업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1985년 와이다 호를 발굴할 당시, 클리포드는 침몰선 안에 2억달러 상당의 금괘가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부 고고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클리포드가 역사를 지나치게 상업화시키고 있으며, 또한 그가 전문 고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굴과정에서 보존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리포드는 자신이 이제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같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발굴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열광을 안겨주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다. 그의 이런 사명은 상당부분 성공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워싱턴 DC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와이다 전시회’에는 12만여명의 관람객들이 찾아들었다.
그는 또, 이번 마다가스카르 해역의 잔해가 키드선장의 유물로 확인될 경우, 어드벤처 갤리호의 실물모형을 제작하여 메사추세츠에 전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아마, 이 계획도 그에게 돈벌이가 되지는 않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클리포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이야기거리가 또 있겠느냐"고 말하며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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