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휴즈(1905~1976)는 영화제작자 겸 감독이요 금기타파자요 모험가였으며 플레이보이이자 비행사였던 기인이었다. 그는 신비하고 어두운 멋쟁이로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매력을 지닌 과격한 인간이었다.
휴즈의 파란만장한 인생편력 중에서 특히 그의 할리웃 여성편력과 화려한 영화제작자로서의 삶에 조명을 맞춘 1시간짜리 기록영화 ‘하워드 휴즈: 그의 여인들과 영화들’(Howard Hughes: His Women and His Movies)이 27일 하오 5시(앙코르 방영 27일 오후 8시, 7월1일 오후 4시) 케이블TV TCM에 의해 방영된다. 이 기록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휴즈와 그의 애인이었던 배우 테리 모어간의 전화대화 내용. 휴즈가 모어에게 “아이 러브 유”라고 고백하는 육성을 들으니 휴즈의 혼이 되살아난 듯해 으스스한 기분마저 든다.
악명 높은 바람둥이로 휴스턴 석유재벌이었던 하워드 R. 휴즈의 장남으로 태어난 휴즈는 어릴 때 어머니의 과보호 밑에서 성장, 후에 병균을 몹시 두려워하는 결벽증자가 된다.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휴즈는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는데 18세 때 아버지가 급사,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고 이듬해 평소 꿈꾸던 할리웃 정복 길에 나선다. 휴즈는 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의 불성실을 용서한다’는 내용의 어머니의 친필 노트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 글이 그의 평생 사랑과 결혼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6피트3인치의 키에 스타 같은 미모와 깊은 표현력을 발산하는 눈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휴즈는 LA로 진출한 뒤 앰배서더 호텔에 진을 치고 초호화 파티를 열고 할리웃 스타들과 명사들과 교분을 맺었다.
휴즈는 할리웃 생애 30여년간 도합 수백명의 스타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에이바 가드너, 수전 헤이워드, 제인 그리어, 라나 터너, 테리 모어, 제인 러셀, 이본 디칼로, 린다 다넬,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와 그의 여동생 존 폰테인 그리고 베티 데이비스, 진저 로저스 및 리타 헤이워드 같은 왕년의 수퍼 글래머 스타들이 그 일부. 그의 마지막 부인도 글래머 스타인 진 피터스였다.
휴즈는 자신의 세 번째 작품 ‘지옥의 천사들’(30)이 빅히트하면서 할리웃에 본격적으로 명함을 내밀게 된다. 1차대전 공중전을 그린 걸작인 이 영화는 글래머 걸 진 할로(사진)의 출세작으로 휴즈는 감독에 스턴트까지 직접 하다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했으나 멀쩡했다.
휴즈는 이어 ‘제1면’과 ‘스카페이스’같은 수작을 만든 뒤 할리웃을 떠나 평소 좋아하던 비행에 집착, 미주 대륙횡단과 세계일주 등에서 신기록을 내기도 했다. 이때 항공사 TWA도 매입해 세계 최고의 회사로 키웠다.
휴즈의 기인적 행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휴즈는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고 점점 청각장애가 심해져 갔다. 그가 나이트클럽을 즐겨 찾던 까닭중 하나는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고성으로 말을 해 알아듣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10년간의 외출 끝에 할리웃에 귀환해 만든 영화가 악명 높은 ‘무법자’(42). 서부 무법자 빌리 더 키드의 얘기인 이 영화는 휴즈에 의해 발견돼 데뷔한 육체파 제인 러셀의 도전적으로 드러난 터질 듯한 젖가슴과 가슴사이 모습 때문에 당시 검열기관인 헤이즈 오피스로부터 관람불가 딱지를 받았었다.
휴즈는 1946년 자기가 몰던 비행기 추락으로 죽다 살아난 뒤로 성격이 서서히 폐쇄적으로 변해가면서도 중개인을 통해 사업을 했고 세계 최대의 목제 수상비행기인 ‘스프루스 구스’도 만들었다. 1948년 RKO 스튜디오를 매입, 영화사 사장이 됐는데 그가 영화사를 산 이유중 하나는 아름답고 늘씬한 여배우들을 수집하는 것. 그는 잡지를 보다가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부하에게 찾아오라고 해 배우를 시켜주고 자기 애인으로 삼곤 했다. 휴즈는 자기처럼 대담하고 모험적인 캐서린 헵번등 몇명의 여배우는 진정으로 사랑해 청혼까지 했지만 타고난 바람둥이여서 한 여자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휴즈는 1957년 정신파탄을 일으킨 뒤 시사실에 들어가 5개월간 영화를 보면서 두문불출하기도 했는데 1966년 베가스의 데저트인 펜트하우스로 거처를 옮긴 뒤로는 자신이 믿는 5명의 남자 간호사들과만 접촉했다. 아내 피터스마저도 방문이 금지됐다.
1971년 펜트하우스를 떠난 뒤로는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뒤로 휴즈는 손톱과 머리를 자르지 않고 침대에 누워 록 허드슨이 나온 ‘아이스 스테이션 지브라’(68)만 미친 듯이 계속해 보다가 고독하게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하워드 휴즈는 여자들로부터는 사모를 받고 남자들로부터는 찬양을 받았던 미국의 현대판 전설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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