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한 때 유행했던 대중가요 「만남」의 가사처럼 우리는 결코 우연이 아닌 만남을 감격적으로 지켜 봤다.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손을 마주잡은 남북의 만남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렇게 만나야 할 사람들이 왜 그토록 만날 수가 없었고 오랜 세월을 돌아 왔는지가 안타까울 만큼 그리운 만남이었다.
남북이 분단된 지 55년간 서로 상대방을 증오하고 적대시하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하고 이산가족의 한이 서리게 했던 지난 세월들이기에 이 만남의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하고 눈물이 핑돌게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험난한 길을 돌아왔던가 하는 억울함마저 엄습해 왔다.
남과 북은 남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남과의 사이에는 만나서 사귀고 친해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부부나 친구 사이는 그렇지 않다. 부부싸움을 하여 사니 못사니 하다가도 한 순간에 마음을 돌려먹으면 일심동체로 되돌아 간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다.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죽이니 살리니 하며 원수로 변했다가도 술 한잔을 하면서 서로 사과하고 오해를 풀고나면 그 옛날 정다웠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수가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은 만났어야 했다. 피를 함께 나눈 동포이기에 만나서 서로 마음을 풀어주고 믿음을 주었더라면 아까운 인생들을 이렇게 허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이 만남이 시작되었다. 남북의 정상이 그 만남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남북한의 정상이 만나고 또 만나면서 이산가족이 만나고 학자들이 만나고 기업가들이 만나고 정치인들도 만나고 모든 사람들이 만나다 보면 사람이 만나는 단계가 지나 마음이 만나게 된다. 이 마음의 만남이 곧 합의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통일이라고 하면 일방이 상대방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굴복시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버릇에 은연중 길들여져 있다. 민족해방전쟁이란 말이나 북진통일이란 말이 그런 생각을 단적으로 표현했던 말이다.
지금도 북한은 남한을 무력 적화통일한다는 기본노선을 완전 폐기한 것이 아니며 남한도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과거 세계 역사에서 민족통일이 주로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을 통해 달성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 민족을 최초로 통일한 신라의 3국 통일도 무력에 의한 통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평화통일도 있었으니 제2의 민족통일인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의 경순왕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고려의 태조를 찾아가 병합을 자청했다.
경순왕은 고려의 정승이 되었고 신라의 관리들은 고려의 관리가 되었으며 신라인과 고려인이 하나의 백성이 되었다. 두 나라 사이의 통일이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은 채 이루어졌던 것이다. 불평등 통일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양쪽의 평등관계는 합의하기 나름이다. 그런 조건 때문에 평화통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공감대를 국민적 합의로 삼아 통일을 할 수도 있다. 이 강과 저 강이 흘러서 서로 만나면 어느 강도 아닌 바다를 이루듯이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통일의 나라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이제부터는 이 통일을 위한 만남의 시대이며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 새 시대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한국의 김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한인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몇십년 후면 모두 땅속에 묻힐 사람들인데 우리 세대의 잘못으로 생긴 분단의 벽을 우리의 손으로 헐어내어 후손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남북 정상의 만남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바램인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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