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대학가에 태극기(太極旗)와 인공기(人共旗)를 나란히 게양하는 일이 잦아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다.
원래 각국의 정상회담 기간에는 귀빈 숙소에 양 국기가 게양되고 환영객 손에도 들리겠지만 남과 북은 지금 각기 다른 나라가 아닌 한 나라가 되기 위한 자리로서 만나기 때문에 각기 다른 국기, 다른 마음으로 만날 수가 없다.
얼마 전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북한어린이예술단 숙소에서 태극기를 떼 내는 소동을 보기도 했지만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앞으로 이런 모임이 자주 있을진대 그때마다 어떤 기를 들어야 할지? 하루는 태극기, 하루는 인공기를 들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은 오는 9월 개최되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에 관한 서한을 남·북 양쪽의 지도자에게 각각 발송했다고 한다. 2002년에는 월드컵 축구도 있다.
지금까지는 국제적 행사에 남과 북이 따로 따로 참가하여 각기 다른 국기를 사용해 왔지만 이제 단일팀을 구성하면 단일 국기도 사용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는 “우리는 하나” 라는 통일 의지를 세계인에게 보여 줄뿐 아니라 남북한민 모두에게 주는 심리적 효과도 클 것이다.(몇 년 전 남북이 단일 팀으로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 임시방편으로 한반도 지도에 남북이 모두 푸른색으로 통일된 기가 사용된 적이 있긴 하다.)
원래 태극기는 1876년 병자수호 조약 체결 당시 국기가 필요하자 고종이 우리 민족이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그려 넣은 태극도형기를 창안하였다. 그해 9월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으로 가며 태극 문양 둘레에 건곤감리 4괘를 그려 넣은 기를 숙소의 옥상에 게양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후 조금씩 모양이 변형되어 오다가 오늘날의 태극기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북한도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 발행 <북한관계 자료집>에 따르면 “새 국가에 이씨조의 망여 유물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며 붉은 바탕에 그려진 흰 동그라미 안에 붉은 5각별이 그려지고 아래위로 희고 푸른 선이 들어간 인공기가 새로 만들어졌다. 물론 “태극기는 인민의 희망과 갈망의 표적으로 왜적의 혹정으로 쓰라린 시기에도 태극기를 간직하고 그를 떳떳이 띄울 날을 하루같이 원했다. 태극기는 통일의 무기로 되는 것이므로 이 태극기 밑에 남북 조선의 인민들은 더욱 단결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은 묵살되었다.(역사비평사 [바로 잡아야할 우리 역사 37장면] 참조)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로 양분되며 국기마저 달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각기 다른 국기가 유엔빌딩 앞 게양대에 펄럭이는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1982년 처음으로 외국 출장을 나갈 때 남산 자유센터에서 반공교육을 받았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 같은 민족이라 반갑다며 사진을 찍자고 하면 꼭 뒤를 돌아 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공기 앞에서 사진을 찍힐 수 있어 공산주의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한 강사의 말을 아직 기억하는데 중국이나 북한을 방문하는 재미 한인들은 인공기가 걸려있는 평양 공항이나 기념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곤 한다.
그렇다면, 남북 통일을 상징하는 단일기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 것인가. 마음 같아서는 일제하 3.1운동 시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흔들던 태극기가 우리 민족에게 익숙하고 의미가 있지만 북측은 절대로 수용 못할 것이고, 인공기는 또 우리에게 얼마나 낯설고 서먹서먹한 가. 앞으로 남북 관계자들은 만날 때마다 ‘단일국기’도 하나의 의제로 정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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