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멀리 미국서 바라다 보며 코리안 아메리칸의 좌표가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는 남북의 화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조국에서 통일의 이야기만 해
도 사상을 의심받아야 했고, 북한을 조금만 긍정적으로 말해도 이적이 되어 감옥으로 가야
할 때가 있었다. 이 엄혹한 냉전시대에 통일의 첫 숨통을 튼 사람들이 코리안 아메리칸이었
다.
극히 소수의 학자 종교인 언론인들이 친북인사라는 낙인을 받으면서 민족화해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가 70년대, 80년대, 90년대였다. 이제 그 암흑같은 미움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는 북한의 김정일 이름뒤에 위원장 호칭이 붙고, 김대중대통령과 나란히 서울 거리 벽
화에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2000년 여름, 우리는, 조국이 이렇게 변해서 세계 역사의 한 복판으로 뛰어드는 감격을 보고
있다. 이 감격과 설레임의 시간에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어떤 가슴과 어떤 눈으로 조국
의 감격을 봐야 할것인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역사적 장면을 기다리면서 나는 미주 한인사회
의 통일운동이 이제 막을 내릴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얼마전 미주 한인사회의 어
느 단체는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데 미주 한인대표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제 남북정상이 만나는 전환기의 시점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은 조국의 문제에서 한발 물러
서서 먼발치로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 자신의 열정을 통일운동
에 나누었던 사람들은 이제 통일운동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남한과 북한이 진지한 대화 동반자가 될 수록 코리안 아메리칸은 남북 모두에게서 거리를
두는 중간자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1세들이 남북과 맺어진 사랑와 미움의 끈을 끊어 버리
고 미국 시민의 위치로 돌아 오는 것이 코리안 아메리칸 장래를 위해서 절실한 결단이다.
긴눈으로 볼 때 미주사회에 있는 평통도 앞으로는 없어져야 한다. 평통이 있으면 앞으로 북
한이 미주 한인사회에다 북한식 평통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주 한인사회는
친남, 친북으로 갈라지고, 자칫하면 일본에서 겪었던 뼈아픈 동족 분열을 미주 한인사회에서
재현할 수가 있다. 우리는 친남, 친북도 아니고, 친남, 친북도 될 수있다는 의연성을 찾아야
한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친남, 친북을 배제해야겠지만, 아울러 어느쪽과도 대
화하고 가깝게 지낼수 있는 친남, 친북도 해야 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남한이나 북한
어느쪽으로 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할 수가 있다. 남한이나 북한은 코리안 아메리칸이 중간
자가 되기 보다는 자기네 체제를 편들고 지지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이나 북한에 사는 동포들은 자기네가 사는 체제의 울타리를 뛰어 넘을수도 없고 뛰어
넘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시민으로 어느 체제
에도 치우치지 않고, 당당하게 객관적인 충고와 도움을 줄수가 있다. 우리가 이점을 간과하
고 남한이나 북한에 치우쳐 자신의 공명과 자신의 이익을 찾아 나설 때 미주 한인사회에 분
열의 씨앗을 심을수 있다.
통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려는 생각을 한다면 그들이 민족통일운동에 기여했
던 공헌이 퇴색될 것이고, 결국은 북한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슬픈 자기 패배이면서
민족 운동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조국에 화해의 문이 열리는 역사적 시점에서 코리안 아메리칸들의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북한을 대변하는 맹목적인 친북인사를 주의 깊게 봐야하는것 처럼, 남한 정부의 정치적 이
용물이 되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바라다 볼수 있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 장래를 이끌어갈 우리 2세들이 북한이나 남한의 정치적 이용물이 되는 것
은 그들을 위해서, 한인사회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우리 2세들은 남북한 모두에게 조국의
애정을 가지고 필요하면 남북한 어느 쪽도 도와야 하겠지만, 남북한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1세들이 이것을 도와야 한다.
미움을 허무는 역사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저 종소리가 민족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씻어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조국에서 들리는 화해의 종소리가 커질수록 조국은 우리들에게서 더
멀리 떠날 것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행복한 마음으로 조국을 떠나 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자리도 돌아 온다. 조국은 아름다운 정신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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