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황제관을 직접 쓴 나폴레옹에게 전후 10여년은 그의 전성기였다. 산뜻한 색깔의 디자인이 잘 어울리는 군복을 입은 그의 젊은 병사들은 자유, 평등, 박애의 삼색 깃발을 날리며 진군하여 남으로 스페인을, 동으로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를 정벌하고 당시 유럽의 중심국 오스트리아, 합스버그 왕가에 굴종을 안겨주니 힘에 관한한 대륙은 그의 천하였다.
하지만 코르시카의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는 그의 컴플렉스는 뒤를 이을 황제만은 명문 왕가의 피가 흐르는 아들이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주선으로 얻어진 신부가 곧 합스버그 대공의 딸 마리 루이제이다.
대리석 같은 피부를 가진 명문가 출신의 이 신부는 남편보다 큰 키에 약간의 마마 흔적이 남아있는 결코 미인상은 아니었으나 흙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망토를 걸쳐입고 만나 결혼한 연상의 아내 조세핀과 갓 이혼한 40을 넘은 그에게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다음 해에 태어난 아들 레글롱은 곧 이태리 왕으로 봉해지고 건강치는 못했으나 황제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갔다. 그러나 워털루에서의 패전은 부자간에 있어야 할 모든 약속이 물거품으로 변했다. 나폴레옹은 포로가 되어 대서양 고도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했고 레글롱은 어머니로부터 냉대를 받으며 고독한 삶을 사는 동안 종종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엉망이 된 유럽 국경선을 재조정하기 위해 비엔나 회의가 열린지 185주년이 되는 지난 겨울, 필자는 그의 아버지와 생이별하고 어린 나이에 죽기까지 다른 모양의 유배생활 속에 외롭게 지냈던 비엔나 교외에 노랑색을 하고 길게 선 쉐브론을 찾았다.
셀 수 없는 그 많은 방 마다에서 왕족의 삶을 보고 화려함에 도취되다 보면 문득 좁고 작은 방에 들어서게 되고 그 오른쪽 모퉁이에서 모형 새가 들어있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새장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외가 식구들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굴욕에 대한 모든 앙갚음이 어린 그에게 가해졌으며 10세 때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남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에겐 이 새장 속의 새가 오로지 유일한 말동무였다.
한편 영국의 자비로운 선처(?)로 45세의 아버지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몇 명의 시종들과 함께 마지막 생애를 보내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끝나지 않은 자기 운명과 계획했던 모든 것을 완성하고 싶었고, 한편 사랑하던 아내가 찾아주고 아들이 달려와 구원이 있기를 갈망했으나 5년 후 51세에 죽기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글롱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은 일찍부터 없었을 뿐더러, 그 쯤 페르고 백작과의 사랑은 몰락한 남편을 잊기에 너무도 뜨거웠다.
젊은 포병장교에서 28세에 프랑스 혁명을 지휘하고 군사적 승리만이 유럽통합이 가능하다고 믿고 싸워온 그도 이제는 보기 흉하게 비대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영국관리에 의해 서서히 살해되고 있다고 믿었다. 침대에 누워 임종을 맞는 나폴레옹의 시선은 벽에 걸려있는 아들 초상화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많은 땅을 가지신 후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아버지는 나를 낳으셨으나 6.25라는 비극적 남북전쟁은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된 행복을 모두 앗아갔다.
꼭 50년 전 몹시도 추웠던 평양의 대동강 다리 밑에서 작은 보따리를 쥐어주며 남쪽으로 향해 10세의 외아들 손목을 놓아주시던 마지막 아버지의 체온과 모습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훗날 맞게 될 며느리를 크게 생각하시어 일찍부터 아들의 혼수준비가 있으셨던 아버지.
그런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하고 모든 어려움 속에서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이 운명했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아들 생각에 눈물 가득했으리라.
할아버지가 되어 맞는 아버지날. 자식들이 마련한 뒤뜰 파티가 있을 때면 생전에 그 분이 좋아하시던 소나무 있는 뒤모퉁이로 가 푸른 잎을 만지며 자식들 모르게 흘리는 눈물은 이제는 내게는 연례행사가 되었건만, 다음 아버지날은 북한땅 어느 하늘 아래 있을 아버님 무덤 앞에서 맞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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