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 깨달음이 선의 최고 경지
숭산스님은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 그가 세운 선원이 전국적으로 수십개가 있으며 그 문하에서 선을 배운 제자만 5만명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제자중에 명문대 출신이 많은 것도 특이하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써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현각, 테하차피에 혼자 힘으로 한국사찰을 세운 무량, 한국 화계사 국제선원 무심, LA 젠센터의 무상스님등등이 모두 하버드와 예일등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숭산스님을 만나 어째서 미국인들이 불교에 심취하는지 들어봤다.
<민경훈 편집위원>
-최근 심장 수술을 받았다는데 몸은 좀 어떠십니까?
▲아직도 완전치는 않지만 여러 분이 염려해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가급적 무리하지 않고 쉬려 합니다.
-미국인들, 특히 미국의 지성인들 사이 불교가 상당한 매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많은 이상주의적인 젊은이들이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길을 잃고 헤메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안된다는 것이 판명이 났고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측면은 마음에 안들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도 삶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수 없고... 그러다 보니 불교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불교가 현대를 사는 미국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본모습을 찾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현대인을 괴롭히는 숱한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불교, 특히 선불교를 가장 널리 전파한 것은 일본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을 뜻하는 젠(zen)이란 용어 자체가 일본말이구요. 요사이 한국 불교가 일본과 중국등 다른 나라 불교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본은 현재 임제종, 황벽종등 여러 종파가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 불교는 정부의 오랜 탄압으로 선불교 자체가 없어진 상태며 티벳 불교는 신비적이며 주술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동남아 불교도 수준이 낮은 편입니다. 지금은 한국 불교가 어떤 나라보다 높은 경지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동남아로 선사를 파견해 선불교의 진수를 가르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국도 이조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까?
▲한국 불교의 뿌리는 깊습니다. 신라의 원효대사부터 고려의 지눌, 조선의 서산대사에 이르기까지 도도한 법맥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조시대에도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습니다.
-불교에는 선종과 교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두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십시오.
▲예를 들자면 교종은 배나무에 꽃이 피었더니 열매가 맺혔다는 것을 설명하는 단계입니다. 이에 반해 선종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는 것입니다. 선이 교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입니다.
-선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순간순간 자기가 놓인 입장이 달라집니다. 집에서는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고 밖에 나가면 회사 사장이나 직원으로 일해야 합니다. 찰나찰나 자기 위치에 따라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선의 가르침입니다.
-무슨 얘긴지 알아 들을수 없을 때 사람들은 “선문답을 한다”고 말합니다. 어째서 부처님의 말씀을 쉬운 말로 들려주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말로써는 진심이 잘 전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하루는 탑앞에 앉아 설법을 전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계셨습니다. 아무도 그 뜻을 몰라 어리벙벙 하고 있는데 가섭 존자만이 가만히 곁에 가 앉았다고 합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법문시간에 부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연꽃 한송이를 들었습니다. 역시 모두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가섭 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고 합니다(염화시중). 불교에서는 말을 하지 않고 뜻을 전달하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칩니다.
-성철스님의 법어로 유명해진 공안중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이해할수 있게 풀어 주십시요.
▲깨달음의 첫단계는 ‘산은 물이고 물은 산’임을 아는 것입니다. 있음과 없음, 공과 색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보다 높은 단계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는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사에 쫓겨 푸른 산과 흐르는 물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보는 세상과 얻기 전의 세상은 같은 세상이지만 전혀 새롭게 보입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한 마음 그 자체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미국에 불법을 전하시게 됐습니까?
▲72년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가 불러 오게 됐습니다. 뉴욕에 갔더니 일본 사람들이 선방을 차려 놓고 불교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면 나도 할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저녁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쳤습니다.
-생활은 어떻게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취미가 있어 고치는 것을 잘 합니다. 낮에는 세탁기계 수리공 노릇을 하고 밤에는 선사 생활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자기 손으로 돈을 벌며 선을 가르치는데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미국인 제자들에게 영어로 설법하는 것이 힘드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다들 제가 개발한 ‘김치영어’에 익숙해져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던 사람들도 곧 익숙해집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웃음).
-미 전국 각지에 선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부는 어디 있습니까?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브라운대학 근처에 있습니다.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여러분들이 도와 주셔서 이제는 제법 커졌습니다. 대지가 13만평에 8층 높이의 법당이 있으며 25명의 불자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불교 바람이 불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등 구 공산권 지역에서 더 그렇습니다. 공산주의 붕괴에 실망한 젊은이들이 불교의 매력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상하게 여기고 뒷조사를 하던 정부 당국자들도 요새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포교를 돕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씩은 유럽 각국을 돌아 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설법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토마스 머튼 신부가 있던 켄터키의 겟세마네 수도원을 비롯해 수많은 교회와 성당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설법을 들은 신부와 수녀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다시 초청하곤 합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결국 이웃에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급 종교는 각양각색이지만 고급종교는 하나입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미주 한인들에게 들려줄 말씀이 있다면...
▲남을 돕는 봉사정신이 아쉽습니다. 나의 명예와 멋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남을 진정으로 위하는 봉사말입니다. 참된 봉사는 나와 남이 하나임을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나를 찾는 일과 남을 돕는 일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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