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울·경 성장률·고용지표 악화, 또 대량실업 땐 지지율 하락 위협
▶ 문 지난달 거제 다녀간 후 급반전, 업황회복 명목 회생 기회 주기로
STX 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은 불과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1월 회계법인 실사에서 회사를 정리하는 비용(청산가치)이 계속 운영하는 것(존속가치)보다 높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특히 성동조선은 청산가치가 7,000억원으로 존속가치(2,000억원)를 5,000억원 웃돌아 사실상 회생에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청산으로 기울었던 두 중견 조선소 처리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새해 첫 산업현장 방문으로 대우조선해양(042660) 옥포조선소를 방문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현장에서 문 대통령은 “조선 경기가 곧 턴어라운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 불황기를 잘 넘길 경우 재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다. 두 회사의 컨설팅을 맡은 회계법인은 대통령이 다녀간 지 한 달도 안 돼 정부에 회생을 전제로 STX조선은 인력 다이어트를 하고 성동조선은 신규 사업부를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조선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전달했다.
조선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인 산업통상자원부와 STX조선, 성동조선해양 고위급은 지난달 31일 서울 모처에서 비밀리에 이 같은 선택지를 들고 회생안을 논의했고 다음주께 최종 방안을 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혈세를 담보로 한 공적자금이 4조원 투입된 STX조선해양과 2조원이 넘는 공적부채를 안고 있는 성동조선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근거는 올해부터 회복되는 조선업황이다.
클락슨리서치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2018년 2,780만CGT(표준화물환산톤)에서 2019년 3,220만CGT, 2020년 3,470만CGT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4분기에 나올 조선업 혁신 방안에 컨설팅 결과는 참고사항일 뿐”이라며 “업황과 산업, 고용 등 전반을 고려한 조선업 비전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청와대가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조선업 불황으로 상흔이 큰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성남 민심이 생각보다 뜨거워 6월 지방선거를 우려해 구조조정을 결국 미뤘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2015년 20만명이던 근로자가 올해 10만명선으로 곤두박질쳐 동남권 경제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 상황이다.
조선업 집중지역(울산·경남)은 2015년 대비 상용근로자가 4만명가량 줄었고 9만명을 밑돌던 일용직근로자는 11만명선으로 치솟았다. 이 지역의 자영업자 수는 2015년 128만명 수준에서 지난해 140만명으로 급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역경제보고서에서도 동남권 제조업 취업자 수(10~11월)는 4만명이 넘게 줄어든 반면 건설업 취업자가 3만3,000명 늘어난 것으로 나온다.
가장 심각한 곳은 대통령의 지역구인 부산이다. 조선업 침체로 부산 지역 조선 및 기자재 업체들의 생산지수는 2016년 초 111.8(2010년=100)에서 지난해 상반기 20.6으로 붕괴됐다. 실업률은 4.6%로 전국평균(3.7%)보다 높고 경제는 3% 성장하는데 부산은 1.1%(부산경제진흥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상황에서 STX조선과 성동조선을 청산하면 대량 실업에 따른 저항과 지역 경제의 추가 침체를 피할 길이 없다.
부산·울산·경남의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전국 평균보다 10%포인트가량 낮은 60%선에 턱걸이하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후 개헌까지 염두에 둔 청와대와 여권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업계는 세계 수주시장에서 중국과의 거친 경쟁으로 국내 조선 빅3마저 공적자금과 유상증자로 연명하는 상황에서 중견 조선사가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조선사 사장은 “대형 조선사는 연구개발(R&D)에 총력을 다해 중국에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냉정히 말하면 몇 년간 R&D가 끊긴 중견사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자금 바닥 성동조선, 구조조정펀드가 삼키나
한국정부가 조선해양플랜트협회를 통해 의뢰한 컨설팅 결과가 회생에 방점이 찍히면서 성동조선해양을 정상화하는 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정관리를 졸업한 STX조선해양은 보유현금(약 1,500억원)과 자산매각을 통해 약 3,000억원 수준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데 반해 보유현금이 바닥난 성동조선은 채권단 차원에서 추가 자금 투입 없이는 운영비조차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동조선은 당장 올해 갚아야 할 금융비용(채무상환액·이자)만 597억원, 오는 2020년까지 총 2,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다. 채권단이 2019년까지 금융비용 가운데 유예한 금액을 더하면 약 2조6,000억원으로 커진다. 올해 아무리 많은 수주를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결국 대우조선해양(042660)처럼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거나 출자전환, 또는 상환금액을 다시 유예하지 않으면 재무위기는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최대주주(67%)이자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자금을 투입하면 동반 부실화된다는 점이다. 수은은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12.42%로 11년 만에 12%대를 회복했다. 국내 은행들은 내년까지 바젤Ⅲ를 적용받아 자기자본비율을 13%로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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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우·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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