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취임한 새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추구하는 외교정책의 핵심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아시아 중시 전략이었다. 중동의 테러전쟁에 몰두한 전임 부시 외교가 소홀히 했던 아시아와의 파트너십을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국익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했다.
처음엔 금융위기 이후 급부상한 중국의 보이스도 상당부분 인정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첫 베이징방문에서 인권문제를 강조하지 않았고 영국의 데이빗 밀리밴드 외무장관은 ‘유럽이 미국과 중국에 의해 형성되는 G2세계에서 방관자가 되는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관계는 오래 가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이견, 오바마의 티벳 지도자 달라이라마 접견과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중국의 대미 사이버 공격, 지적재산권에 대한 마찰, 그리고 기타 무역 분쟁들은 양국관계를 얼어붙게 했다. 결국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중국을 견제할 ‘레버리지’가 필요하다며 대책을 지시했다”
2011년에 접어들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에 대한 포커스를 새롭게 강화하는 정책에 ‘재균형(rebalancing)’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을 앞두고 외교전문지 ‘폴린 폴리시’에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심리가 드러난 클린턴 국무장관의 기고 ‘미국의 태평양 세기’가 실렸다.
그러나 이렇게 천명했던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는 집권2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본격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연방정부 폐쇄사태로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아시아순방까지 취소했다.
일부 전문가들의 말처럼 애초부터 이행하기 힘든 ‘과장 선전된 전략’이기 때문인지, “시급한 사안이 중요한 사안을 압도한다”는 외교의 본질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난주 발표된 연방 상원 외교위의 보고서 ‘재균형을 다시 균형잡기’도 “화려한 연설과 정책발표가 실제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못해 기대와 현실사이의 큰 괴리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22일 워싱턴을 출발한 오바마의 이번 아시아 순방길의 발걸음은 별로 가볍지 못할 것이다. 8일간 일본-한국-말레이시아-필리핀 4개국 방문에서 도전해야할 과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
아시아와의 관계 재조정에 의한 안보 및 경제 관계 강화라는 순방의 목적에 접근하려면 가장 급선무는 동맹국과의 신뢰 재확인이다. ‘우방 미국의 리더십’에 대해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아시아 중시 전략은 워싱턴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아직은 의구심의 대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오바마의 러시아 대응을 지켜본 아시아 동맹국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
만약 아시아 동맹국들이 중국에 위협을 느낀다면 미국은 실제로 동맹국들을 보호해 줄 것인가? 국방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지역 군사력 증강은 과연 가능한가?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위기의 와중에서 정말 아시아로 중심축을 옮길 수 있는가? ‘아시아 재균형’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명확한 메시지로 대답을 주어야 할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일본과 중국, 필리핀과 중국 간의 영유권 분쟁에서 어디까지 동맹국들의 손을 들어줄지, 대북공조를 강조하며 한일 간의 역사적 갈등을 성공적으로 중재할 수 있을지, 아시아 중시 전략의 경제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 어떤 선물을 받아 갈 수 있을지…‘주요정책 발표 보다는 모멘텀 구축에 초점을 맞추어’ 가시적 성과에 대한 기대치는 낮춘다 해도 ‘성공적 방문’이라는 평가라도 받으려면 오바마의 행보는 줄타기하듯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우방과의 유대강화와 중국과의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외교력이 요구되는 민감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가 될 이번 한국방문에서 오바마에게 기대되는 것은 외교력만이 아니다.
아시아로 출국하기 전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산사태로 40여명이 목숨을 잃은 워싱턴 주를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했다. 아시아 순방의 ‘적절한 출발점’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표현한다. 이번 방문국 모두가 최근 천재지변과 인재 참사를 당한 지역이어서 오바마 자신도 방문 중 그 고통의 현장과 잔재를 목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강진과 필리핀의 태풍은 그 후유증에서 한 단계 벗어났지만 말레이시아의 항공기 실종과 특히 한국의 페리 참사는 진행 중인 비극이다. 총체적 부실에 대한 국민의 거센 분노에 직면해 경황없는 한국정부가 이번 회담에 어떻게 임할지 솔직히 우려된다고 한 익명의 백악관 관리는 우려하기도 했다.
아직 잔해로 뒤덮여 있는 산사태 지역에서 오바마는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
“이 나라는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린 아무데도 안 갑니다. 여러분이 필요할 때까지 여기 있을 겁니다” 그리고 희망을 다짐했다 : “어려움이 닥치면 우린 서로를 돌봅니다, 기운을 되찾고 일어나 다시 세웁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강해집니다”
재난과 참사에 직면했을 때마다 지도자의 강인함으로, 아버지의 다정함으로 희생을 애도하고 극복의 희망을 심어주며 국민의 상처를 치유해 ‘최고 위로자’(consoler-in-chief)로 불리는 그가 한국민의 가슴에도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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