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와 꿀의 나라에서’ 감독한 앤젤리나 졸리
앤젤리나 졸리가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폭력과 만행에 대해 등 돌리고 있을 수 없어
잔혹한 인간 분석키로
전쟁 참여했던 측의 민감한 반응 있었지만
내 가슴으로 영화 찍어
23일 개봉되는 보스니아 전쟁의 와중에 꽃 피는 적과의 사랑과 전쟁의 참상을 그린‘피와 꿀의 나라에서’(영화평 참조)로 감독으로 데뷔한 앤젤리나 졸리(36)와의 인터뷰가 지난 8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밤색 긴 머리에 강렬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눈과 두꺼운 입술을 한 졸리는 나이가 들수록 성숙미를 더해가는 우아하고 지적인 여자로 깊이가 있다.
유엔 친선대사이기도 한 그는 마치 여왕과도 같은 위엄 있는 자세로 앉아 질문에 진지하고 침착하게 답했는데 자신의 영육을 다 바쳐 만든 영화인데다가 작품의 처참한 내용 탓인지 한때 감정에 복받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당신은 영화를 위해 보스니아 전쟁의 여성 피해자들을 만났는데 그 소감은 어땠는가.
- 나는 지난 10년간 유엔을 위해 세계 곳곳을 방문하면서 목격한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전 유고에 관해 읽고 연구하게 되었고 점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전쟁에 관해 많은 것을 모른 내가 부끄러웠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원시적이 될 수 있으며 또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또 국제사회는 어떻게 이런 만행에 등을 돌릴 수가 있었는지 제대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알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난 영화에서 최소한 전쟁의 잔혹한 상황 속에서 굴절된 인간들을 분석하고 싶었다.
*본인이 꼭 감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으며 그동안 배우로서 당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은 누구인가.
- 각본을 쓸 때만 해도 영화로 만든다거나 감독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나의 하나의 명상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화가 현실화되면서 이 전쟁에 관련됐던 여러 측에서 제작에 참여를 하게 됐다.
그리고 내용이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난 결국 끝까지 작품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내게 큰 영향을 준 감독은 경제적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우리는 제작비가 소규모여서 그의 연출방식이 큰 도움이 됐다.
*외국어(세르비아어)로 영화를 만들기가 힘들었을 텐데.
- 힘들었지만 사실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영어 각본을 세르비아어로 번역할 때도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정치적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그들에게 보여줬다. 영어판으로 만든 것은 자막 읽기를 싫어하는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서다.
*영화에는 겁탈 장면을 비롯해 끔찍한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장면들이 당신에게 감정적으로 얼마나 강한 영향을 주었는가.
-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과거를 재생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난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 절규는 우리들의 가슴이 국제사회를 향해 하는 절규이다.
*민감한 주제를 지닌 영화로 전쟁을 경험한 종교와 민족이 서로 다른 당사자들의 영화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 않은가.
- 불과 15년 전의 일이어서 상당히 민감하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도 사실이다. 난 그래서 그들에게 내게 기회를 한 번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배우들도 이 영화가 사실을 정확히 묘사하지 않거나 옳지 않을 경우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들을 했었다. 비난과 비판도 많았지만 난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밀고나갔다.
*당신은 한편으로는 할리웃의 화려한 각광 속의 수퍼스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살육과 참상을 목격한 사람인데 그 둘의 간극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 난 그저 착한 사람이 되고 아울러 삶의 모든 면에 관해 배우려고 할 뿐이다. 할리웃의 부분은 나의 삶의 총체는 아니다. 그래서 난 언제나 배우고 또 여행을 하려고 노력한다. 난 이것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준다.
난 맨 먼저 무엇보다 어머니로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나의 모성은 다른 나라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이 내 삶의 한 부분이다. 난 배우라는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또 그것을 즐긴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난 그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다.
*이 전쟁으로 많은 가족들이 서로 생이별을 해야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족의 귀중함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가.
- 나는 처음으로 전장을 방문한 뒤로 영원히 인생관이 달라졌다. 난 결코 다시는 자기 파괴적이지 않을 것이다. 난 내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과 내 이이들을 먹일 음식이 충분히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아이들이 안전하다는 것 등을 결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할리웃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채우고 있다. 몇 년 전에 전쟁의 한 복판에 섰을 때 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그로 인해 영원히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난 가족을 아끼며 그들이 나의 모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아이가 여섯인데 더 추가할 생각은 없는가.
- 현재로선 그럴 생각 없다.
*한국은 반세기 전에 내전을 겪은 뒤로 아직도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그런데 북한 주민은 굶어 죽는데도 그들의 지도자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한다. 유엔대사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생각은 없는가.
- 그 문제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한다. 또 그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어 나의 유엔 활동의 일환으로서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브래드와 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얼마 전에는 브래드 혼자 한국을 방문했다(‘머니볼’ 홍보차).
난 아이들 돌보느라 갈 수가 없었다. 난 한국에 갔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얘길 나눈 적이 있다. 또 북한문제에 관해 일하는 유엔관리들과도 자주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우리는 모두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 문제에 대해 계속해 나를 교육시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그 무언가가 있다면 분명히 할 것이다.
*감독을 하면서 당신만의 독특한 일을 한 것이라도 있는가.
- 단지 간식을 많이 준비해 수시로 먹었다는 것 외엔 별 특별한 일이 없었다. 영화가 너무나 진지한 내용인 데다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아울러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을 뿐이다.
*헝가리 촬영현장에 아이들이 찾아왔는가.
- 아이들과 함께 헝가리에서 살면서 아이들은 헝가리 학교에 다녔다.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은 세트에 왔지만 영화 내용 때문에 카메라 근처에는 못 오고 세트 밖에서 놀았다. 영화 내용 때문에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이 더 행복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쏟아 부었다.
*지구 온난화가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당신은 우리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보는가.
- 우리의 미래에 대해 나도 크게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린 낙관적이어야 한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싸워 문제를 해결하려면 머리를 쳐들고 맞서야 한다.
*언제 각본을 쓰기 시작했으며 각본에 현지 배우들의 의견을 참조했는가.
- 전쟁이 났을 때 난 17세였지만 그 뒤로도 그 전쟁에 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엔대사로서 그 전쟁에 관해 알게 되고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게 되면서 가능한 한 사실에 충실히 훌륭한 글을 쓰려고 애썼다.
각본이 완성된 뒤 난 그것을 맨 처음 영화에 세르비아군 장군으로 나온 라데 세르베지아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라데는 그동안 여러 편의 보스니아 전쟁에 관한 영화가 내용이 공정치 못해 출연을 거부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자문을 구한 것이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또 도와주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자신들의 개인적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영화는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만든 영화다.
*영화를 만드는데 유엔 측으로부터 어떤 지침이나 경고라도 받았는가.
- 유엔 관리들과도 얘기했고 보스니아 정부 관리들과도 얘기를 했다. 그리고 리처드 홀브룩과도 얘기를 했다. 또 전쟁의 피해자들과도 얘기를 하면서 가능한 한 균형을 맞추려고 애썼다.
*당신은 미셸 오바마보다도 유명한데 어깨가 무겁지 않은가.
- 가끔 그렇긴 하나 난 내 삶에 대해 지극히 감사하며 그것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는 않는다. 제작비를 댄 사람들은 이 영화가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지리라는 확신이 없었더라면 관여를 안 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너무나 허탈해 브래드 앞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영화가 제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나 아닐까 또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은 아닐까 해서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압박감을 느껴본 적은 없으며 또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을 해본 적도 없다.
영화에 관련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가 영화를 만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난 그저 좋고 정직한 삶을 살고 내 가족에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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